2024년 12월 3일, 철인 3종 대회 준비를 위해 호기롭게 등록한 첫 수영 강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TV를 보고 있던 아빠가 상기된 목소리로 계엄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계엄이라, 내가 마지막으로 계엄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것이 언제던가. 정확한 시기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학생 시절 역사 수업과 군인 시절 정신교육에서 접했던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사독재자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윤석열은 끊임없이 드러나는 각종 부정행위 의혹으로 인해 이미 많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고, 그렇기에 이 계엄은 예상하지 못했으면서도 윤석열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올해 들어 정치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는 여, 야 양당을 모두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진보와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의 견제를 통해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질 때에 국민들에게 정책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띨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시선이다. 다만, 정치에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해 오랫동안 보아온 국회와 정부의 실질적 행태는 국민들을 위한 정치 활동보다 반대 세력과 그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한 싸움들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만큼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회의원들과 이미 대한민국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다.
바닥난 신뢰와 인내심이 어디까지 더 고갈될 수 있는지를 시험대에 올려놓아보기라도 하듯, 윤석열은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비상계엄령의 전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윤석열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을 꺼낸다며, 야당이 저지른 행위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그들을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 칭하고 반드시 척결할 것이라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진정한 반국가 세력이란 무엇인지를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헌법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그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옴을 명시하고 있다. 즉, 국가란 국민이다. 반국가 세력이라 함은,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는 세력일 수밖에 없다. 이 정도의 설명이면 진정한 반국가 세력은 국가의 대표임을 자처하고 있는 윤석열과 뻔뻔하기 그지없는 이른바 친윤 세력이라는 것을 바로 캐치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윤석열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매우 낮은 지지율을 얻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완전히 망각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령에서 의미하는 국가란 결국 국민이 아닌 윤석열, 한 명의 외롭고 처량한 인간일 뿐이었다.
이 계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윤석열은 마치 자기 자신이 진정한 반국가 세력임을 인정이라도 하듯이 계엄을 통해 정치적으로 자결함으로써, 비상계엄령에 피를 토해낸 대로 자신을 훌륭하게 척결해나가고 있다. 비상계엄은 치밀한 군사적 작전보다는 전무후무한 파격적 퍼포먼스로써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후 이어진 포고령에서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단어들과 문장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모든 출판사와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항목이 가장 우습다. 지금은 21세기다. 스마트폰을 소유한 개인이라면 모두 비공식 출판사이자 언론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윤석열과 내란 공범들은 자신의 행동거지 하나 정갈히 하지 못하면서, 5천만에 가까운 출판사와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 만약 계엄이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성공적으로 통제할 능력은 없었을 것이다. 전공의들을 부각한 5항은 또 얼마나 찌질하고 졸렬한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혼자 구시렁거리며 마치 인터넷 게시판에 한심한 푸념을 늘어놓는듯한 항목이다.
나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그날, 계엄 해제가 의결되기까지의 모든 단계를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뉴스를 통해 생방송으로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이 용감하게 계엄군에게 맞서는 장면과, 국회의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국회로 모여 신속하게 계엄 해제안을 의결시키는 모습까지 한 장면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윤석열이 또 윤석열 한다 정도의 수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회에 헬리콥터와 무장 병력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굉장한 당혹감을 느꼈던 것도 생생하다. 리모컨을 잡고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고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 내에 모여 있음과 동시에 외부에서 보좌관들과 기자들이 필사적으로 계엄군의 진입에 대응하는 모습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그 한마디가 8년이 지난 아직까지 머리에서 음성 지원이 되는데, 어찌 우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대통령의 계엄 발작쇼를 잊을 수 있을까.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은 후, 나는 계엄령이 해제된 그날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국회를 찾았다. 계엄군이 부수고 들어갔던 창문을 보고, 무너지는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인지 머릿속에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국회 관계자로 보이는 남성에게 막혀 국회의 외곽은 볼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서는 되려 무너지는 민주주의가 아닌 번영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이 보였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국회 앞에서의 시위는 단조로운 구호의 반복이 아닌,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일종의 문화제 같은 행사를 펼치고 있었다. 바로 어제 비상 계엄령이 선포된 국가의 시민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윤석열이 떨어뜨린 국격을 국민들이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는 당시 진행자의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계엄 선포 이전부터 명태균 게이트를 통해 조금씩 들려왔던 탄핵의 목소리는 12.3 내란 이후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어 나갔고, 이미 수차례 계엄을 겪으며 수많은 목숨의 희생을 통해 얻어낸 민주주의를 다시 앗아가려는 윤석열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범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뚫을 기세다. 1차 탄핵안 표결은 예상했던 대로 여당의 집단 투표 거부로 인해 부결되었으나, 이제 2차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결과는 예상할 수 없다. 윤석열은 헌재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표결이 되더라도 탄핵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현재 윤석열과 여당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듯하다가도 좁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당의 입장은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같이 당장 내일이라도 180도 뒤바뀔 수 있어, 신뢰가 가지 않는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결국 그때가 되어야만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이 단체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들의 투표 불참도 국민들의 분노도 사실은 모두 예상된 바다. 나는 하야던 탄핵이던 윤석열이 대통령 행세를 빠르게 그만두는 것에 백번 찬성하는 바이지만, 여당이 바보가 아니라면 본인들의 살 궁리를 할 시간만큼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다만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절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투표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집단 투표 거부를 지금 이 시국의 당론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다.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전 국민이 정치계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단지 쌓여왔던 분노의 일시적 표출이 아닌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래지향적 분위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대형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대형견을 산책시킬 때에는 경계를 늦추지 말고 목줄을 단단히 잡아야 하는 법이다. 특히 10대, 20대의 정치적 관심과 교육이 절실하다. 비록 정부와 국회가 보여준 모습이 내가 행사하는 한 표가 정국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할 것이라는 허탈감을 줄 지라도, 우리는 주권자로서 투표를 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러한 선례가 많아져야만 국회에 진정한 주인들의 목소리가 전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만 아직도 군부 독재 시절을 그리워하고 미화하는 소위 태극기 부대에게 이 나라를 헌납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 대선에는 이번 계엄을 계기로 투표율이 조금이나마 오를 것이라 굳게 믿는다.
올해 여름에 잠시 체스에 관심을 두었던 적이 있다. 체스에는 블런더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정말 쉽게 말하면, 실수라는 뜻이다. 나는 체스를 배울 때에 경기의 승패보다도 이 블런더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특정 상황에서 최상의 수는 무엇이었고 왜 이런 수를 두었어야 하는지를 계속 파헤치곤 했다. 아직 체스 실력은 엉망진창이지만, 분명 블런더는 최고의 스승이자 체스를 배움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번 내란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20대 대선에서 내가 저지른 블런더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블런더가 없기를 바라며 다음 수를 둠에 있어 보다 신중하리라 다짐했다. 윤석열 또한 치명적인 블런더를 저질렀으며, 이는 기권이나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체스 경기에서 패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겸허히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나,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판돈으로 걸고 계엄이라는 블런더를 저지른 플레이어에게는 결코 다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강력히 처벌받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정의가 살아 숨 쉼을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