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2020)
(스포주의_)
"죽음이란 그저 신이 내게 허락한 시간 동안 나만의 인생을 잘 살아내고 떠나면 그만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죽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쩌면 그 인생은 온전히 나의 것만이 아니었단 사실이다."
- 유리 대사 中-
나는 평소 '죽음'이란 단어나 생각에 특별히 두려운 감정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죽음'이란 것에 깊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아,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막연히 죽음이란 단어나 상황에 대해
"사람이 태어났으면 죽는 거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지 그게 무서운 건가?" 싶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며 '죽음'이 주는 무게감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의 죽음이 남겨진 이들에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정통으로 맞게 되면서,
비로소 "죽음은 무서운 거였어..." 그리고 "너무나 슬픈 일이었어"를 깨닫게 되었다.
아이를 임신 중이던 유리(김태희)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본인은 죽더라도 아이를 살리려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면서도 아이와 남겨진 남편. 강화(이규형)를 두고 완전히 하늘나라로 떠날 수 없는 마음도 충분히 가여웠다.
그래서 유리는 선택했다.
자신의 아이 서우(서우진)가 걸을 때까지만... 그리고 강화가 조금 덜 슬퍼질 때까지만...
귀신으로라도 그들 곁에 잠시 머물기로.
그리고 그 시간은 5년이나 흘렀다.
그러면서 유리는 보고 느낀다.
자신의 빈자리,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그 공백은 서우와 강화에게는 쉬운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또 자신을 사랑해주는 친구와, 부모님에게 자신의 죽음은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는 것을...
그러면서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홀로 치열하고 외롭게 버티는 강화가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더 이상은 슬프지 않기를...
부모님과 친구들이 자신을 기억하며 더 이상 눈물짓지 않고 웃어주기를...
"찰나의 순간을 빌듯 우리가 사랑한 시간 수년. 켜켜이 쌓인 시간들 속에 우리의 운명은 무적인 줄 알았다."
- 유리 대사 中-
그렇게 남은 이들의 마음을 하나, 둘씩 느끼며 귀신으로 살아가던 유리는 신의 상인지 벌인지 모를 49일 동안,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원래 자신의 자리인 강화의 아내, 서우의 엄마 자리를 찾으면 영원히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기회 또한 얻게 된다.
그런데 어쩐지 유리는 자신의 자리를 찾을 생각이 없다.
강화와 서우의 곁엔 민정(고보결)이라는 강화의 새로운 아내이자 서우의 엄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민정을 보며 강화가 서서히 웃고, 서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민정이라는 것을 지켜보며...
유리와 강화의 10여 년의 시간이, 사랑이 아무리 단단했을 지라도,
자신의 죽음으로 그 시간들은 더 이상 무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너무 간절히 강화가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민정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것을 보며 아주 잠시 강화에게 서운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유리는 그런 강화를 보며 서운함보다는,
민정으로 인해 강화가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더 바랐고,
서우에게 든든한 엄마가 생긴 것에, 다시 태어나도 혹은 죽어서도 갚지 못할 고마움의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유리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욕심내지 않는다.
벌인지 상인지 모를 49일을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잠시 그들 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았다. 그 향기가 세상에 남아, 우리의 기억 깊은 곳을 찌르고 있었다.
-강화 대사 中-
보통은 작품의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며 보기 마련이다.
유리가 귀신이었을 땐 자신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마음.
기꺼이 인간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욕심, 행복만을 취하지 않았고!
서우를 다른 귀신으로부터 지켜냈으며 강화와 강화의 처, 민정(고보결)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그녀의 너른 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정말 유리의 시선, 유리의 마음, 그리고 그녀의 선택에 기뻤고 폭풍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상하게 유리에게만 감정이입이 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유리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남은 사람들에게 더 연민의 마음이 들었던 드라마였다.
딸, 유리를 보내지 못한 채 매일을 기도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유리 엄마의 마음.
친구 유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유리의 SNS에 계속 글을 남기는 유리 절친의 마음.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수많은 세월 동안 유리 곁에서 유리만을 사랑하고, 그녀의 죽음에 가장 애통해하고 그리워한 강화의 마음이 가장 애달팠다.
유리의 죽음으로 멈춘 그의 시간과 공간에 그는 죽으려고도 해보고, 살아가 보려고도 미친 듯 발버둥도 처 본다.
하지만 의사인 자신이 정작 자신의 아내를 살려내지 못한 자책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죄책감은 의사지만 수술실에서 환자를 수술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지닌 의사로 만들었고, 그는 애써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거나 상처를 극복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희미해지는 유리를 잊지 않으려는...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내지 않으려는 강화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면서 유리가 살아 돌아왔을 때,
유리가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찾아야 다시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시는 그런 자책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유리에게 기꺼이 최선을 다한다.
유리에게 살라며 하늘로 돌아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유리는 떠나고 강화는 이야기한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았다. 그 향기가 세상에 남아, 우리의 기억 깊은 곳을 찌르고 있었다."
강화의 먹먹한 이 말이 가장 무너졌던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유리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렇게 떠난 그녀를 이젠 더 이상 슬프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강화를 보며
진짜 사랑이 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원래도 연기 잘하는 이규형 배우가 강화여서 참 다행이었던 매 순간들이었다.
"세상에 자신의 마지막 날을 미리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며 수많은 죽음들이 우릴 스치지만,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들의 가슴 아픈 드라마로 그려지고 만다.
가슴 아픈 주인공은 나의 엄마일 수도, 나의 아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
-유리 대사 中-
어쩌다 시작한 이 드라마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어버렸다.
'죽음'이란 의미와 단어와 무게감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된 첫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류의 드라마는 많다.
세상에 미련, 혹은 올라가지 못할 어떠한 사유로 귀신이 되어 인간들 사이에 귀신으로 남아서 진행되는 이야기.
그래서 방영 당시에는 아무리 김태희, 이규형 이어도 기꺼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맞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매회, 매씬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대해 성찰하고 통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없었던 시간들, 존재했던 세월들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이야길 원, 투, 어퍼컷으로 날리던지....
정말 인생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을 해본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도 없다. 는... 대사가 가슴속 깊숙이 박혔다.
그러면서 살다가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 깊은 통찰의 시간도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소중한 나의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주변 사람의 죽음으로 남은 나에 대해,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 나의 죽음으로 남은 사람들의 시간들에 대해... 말이다.
내가 남긴 자리가 남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삶인지를 곱씹다 보니 그 어떠한 경우에도 나 스스로 나의 삶을 정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비극이든 희극이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긴 하지만... 소중하게 받은 이 아름답고 찬란한 나의 인생에 대해, 관계에 대해 일희일비하는 태도에 대해 반성도 하게 되었다.
그저 1차원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좋은 삶을 살아야지'를 뛰어넘어,
'죽음'으로써 삶을, 인생을 보게 되니 또 다른 차원의 라이프에 대한 생각들을 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덮어두고 강화와 유리의 선택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은 드라마였다.
고마웠어. 하이 바이, 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