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 神, 도깨비' (2016)
[스포주의]
가을의 끝자락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 되면 문득 도깨비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아마 차갑고 추운 계절에 보았던 쓸쓸했던 도깨비가 아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주로 영화와 드라마 리뷰를 하지만 그 작품의 결론이나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진 않는다.
그것은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품의 결말을 미리 알려버리는 것에 대한 부담 내지는.
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어떤 작품을 새로이 보게 할 수도 있기에 나름의 배려.
그리고 내 부족한 글이 훌륭한 작품의 결말을 미리 알리게 함으로써 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뭐 이런 복합적인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때로는 결말 자체가 그 작품의 정체성이자 결말이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글에 담지 않고서는 이야기되지 않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스포주의]라는 표시를 하며 글을 쓰는데,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이다.
소심한 나의 글에 파격적으로 결론부터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수십 번을 봐도 여전히 '도깨비'는 매우 슬프고 애달픈 새드 앤딩이라고 생각한다.
도깨비(공유)는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지난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게 그렇게 허망하고 슬플 수가 없었다.
도깨비 신부였던 은탁이(김고은) 이번 생에선 결국 죽게 되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 도깨비를 찾아왔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사랑하는 이들이 생을 뛰어넘는 재회를 해도 이렇게 슬플 수가 있구나...' 룰 많이 느끼며 한참이나 넋을 놓고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별은 죽어야지만 되고, 재회는 다음 생에서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한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
그리고 그 생과 사의 기로에서 도깨비는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떠나보내야만 하고,
'영원히'라는 세 글자를 품고 살아내야 하는 도깨비이자 김신이 나는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김신(공유)은 고려의 장군이었다.
전장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었고, 왕에게 다시 돌아온 그에게 내려진 어명은 죽음이었다.
가슴에 검이 꽂혔고 그렇게 죽나 싶었지만, 무슨 신의 의도였는지 가슴에 검이 꽂힌 채 죽지 못하고 그렇게 9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간다.
그가 불멸의 삶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도깨비 신부를 만나, 그녀가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주는 것 밖엔 없었다.
그렇게 천년을 살아내고 있는 김신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은탁을 마주치게 되는 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둘은 서로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은탁의 엄마가 은탁을 가졌을 때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다 죽어가면서도 뱃속에 아이만은 살려달라는 간청에 도깨비 김신은 그렇게 인간의 생에 관여하여 두 모녀를 살려준다.
그 덕이였을까? 탓이었을까?
은탁은 어려서부터 귀신을 보게 되었고, 아홉이라는 나이가 들 때마다 저승사자(이동욱)에게 끌려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그게 그 둘의 시작이었다.
이 둘은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은탁은 김신이 그렇게도 바라는 죽음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깨비 신부였고,
은탁은 도깨비에게 알바, 남친, 500만 원 이렇게 세 개만 도움받으면 되는 사고무탁한 몸이었다.
하지만 그 둘은 필요충분조건 이상의 사이가 된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고, 그 둘의 사랑이 김신의 불멸의 삶을 끝낼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검을 은탁의 손에 의해 뺄 수 있게 되었고, 죽으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김신은 죽을 수 없었다.
평생을 죽기 위해 살아온 그는 신에게 다시 살게 해 달라는 간청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 이제는 정말로 영원히 살아내야 하는 운명을 알면서도 은탁에게 돌아오는 선택을 한다.
다시 만난 그들은 열렬히 사랑했지만, 도깨비 신부이건 무엇이건 한낱 인간인 은탁은 스물아홉에 그렇게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했고 김신은 그렇게 기다리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김신은 말한다.
"거의 천년이야. 난 뭐 천년이나 슬퍼?
난 내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사는 당찬 도깨비야.
천년만년 가는 슬픔이 어디 있겠어?
천년만년 가는 사랑이 어디 있고?"
은탁은 말한다.
"난 있다에 한 표!"
김신은 말한다.
'어느 쪽에 걸 건데?
슬픔이야, 사랑이야?"
은탁은 말했다.
"슬픈 사랑?"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의 운명은 그리고 사랑은, 슬픈 사랑이었다.
평생을 죽기만을 바라던 김신이 불멸의 삶을 끝낼 수 없었던 건 결국, 슬픈 사랑이어도 사랑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의 끝자락에서, 몇십 번이고 다시 봐서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법도 한데도.
여전히 슬픈 사랑을 하는 이들이 그렇게 애달프고도 애달프다.
많이도 쓸쓸하고, 시리도록 찬란했던 도깨비.
이번 겨울은 조금은 덜 슬프고 덜 아프며 덜 외롭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