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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아리를 생각한다..

일상공유(18)

by 이음

매년 건강검진은 나에겐 휴식의 시간 같았다. 건진 핑계로 하루 그냥 쉬는 것도 좋거니와. 수면내시경을 하면 참 푹 자고 나오는지라.. 일부러 피로가 누적된 금요일 이른 시간에 예약을 했다. 건진 전후로 먹는 것 조심, 술 조심, 그리고 몸무게와 체지방률 등등에 신경 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특별한 지병은 없었지만 내 '몸뚱아리'를 그처럼 오래 생각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1년 중 어느 날, 며칠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조금 더 특별했다. 생애 첫 대장내시경.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인데 대장내시경은 한 번쯤 그래도 해야 하지 않나 정도의 생각. 장을 다 비운다는데, 뭔가 몸을 한번 좀 가볍게 정화해보고 싶다는 생각.


대장내시경은 정말 하루종일이었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장 결정제 복용 시작. 와. 물을 많이 먹는 것부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전날부터 뭘 거의 먹지도 못한지라. 잠들기 전 먹고 싶은 음식이 잔뜩 떠올랐는데. 당일 오전엔 비워내느라.. 먹고 싶은 본능조차 생기지 않았다. '몸뚱아리'를 생각했다. 나는 이제 몸만 남는다. 그냥 몸뚱아리만 남아서. 꽂으라면 꽂고 누우라면 눕고. 갖가지 의료기기들이 닿았다 멀어지고. 몸 구석구석. 장기 곳곳이 훑어진다.


오후 건진이었는데 끝나고 나니 거의 3시간쯤 흘러있었다. 수면내시경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내 몸이 너덜너덜해진 거 같은 느낌이 남았다. 아 나 정말 그냥 동물이구나. 이성이 미칠 여력도 없이 병원에서 준 쿠폰으로 새우야채죽을 테이크아웃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렇게 먹고 싶었던 음식, 죽을 절반쯤 먹었을까. 끝나면 해장국이니 고기반찬이니 뭐니 먹고 싶었는데. 음식도 그냥 거기까지였다. 열심히 비워낸 장을 생각하면 음식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입을 즐겁게 하는, 보기에도 예쁘고 풍미도 다양한 그 음식들의 결말을. 새삼 체험한 거 같달까. 무엇보다 잠이 계속 쏟아졌다. 건강검진은 그 자체로 힘든 일이었다.


몸뚱아리. 내 몸. 요가도 꾸준히 하고 먹는 것도 건강식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작년보다 좋은 성적은 아닌 거 같다. 2주 뒤 결과지를 받아봐야겠지만. 경각심은 분명히 생긴.


푹 자고 일어난 오늘 아침엔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뭐 이렇게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울 일이야.

뭔가 좀 가벼워진 것 같은 몸뚱아리를 이끌고 오전엔 인요가 수업을 들었다. 점심엔 스타벅스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다시 돌아온 보통의 일상에. 눈까지 이렇게 내려주신다니. 평화로운 날이다.


계기 삼아. 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잘 살아내 보자. 올해가 이제 정말 한 달 밖에 안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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