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유(19)
설 연휴의 한복판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제목으로 내걸고. 생각한다.
제목과 달리. 사실은 긴 연휴. 푹 쉬고. 가족과 함께 잘 보내고 있다.
첫 사흘은 서울에서 가족과 나의 집에서 보냈다. 공연 보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 접대했다.
사달은 이틀째 생겼는데. 요즘 공연 표가 여유가 좀 있었던 터라 첫날 공연을 보고, 이어, 둘째 날 다른 공연을 또 보려고 했던 것. 엄마가 2부 중간쯤. 갑자기 나가겠다고 하셨다. 덥다고 한참 그러시다가. 나가겠다고.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언니는 침착하게 엄마를 모시고 나갔다. 나는 조금 텀을 두고 옷을 챙겨 나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어디 많이 아프신 건가... 엄마는 멀미 증상 같은 게 있었다고 하셨다. 속도 메슥거리고 땀도 나고 머리도 아프고 그래서 참을 수 없었다고.. 다행히 늦은 예매에 좌석이 뒤쪽 문께였고, 또 다행히 옆자리가 전부 비어있었다. 참 감사하다 싶었다. 큰 소동이 없었고. 엄마는 밖에 나온 뒤에는 증상이 괜찮아졌다고 하셨다.
우리의 불찰이었다. 엄마는 공연장의 답답함과 긴 러닝타임을 견디실 만큼의 체력이 되지 않으셨던 건데.. 공연을 또 보자고 한 언니 탓이다!..말했고. 엄마가 더는 미안해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 실은 젊은 나도 공연장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힘들다고.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우리 그래도 거의 끝까지 봤다는 말로. 하나도 아쉽지 않다는 말로. 엄마는 이게 아마 생에 마지막 공연일 거 같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사실은 엄마보다 내가 더 놀랐던 것 같다. 며칠 같이 보내다 보니 알게 된 것. 엄마는 훌쩍 나이가 드셨다. 뵐 때마다 더 그렇다. 다른 사람 말은 잘 듣지 않고 끊임없이 얘기를 하신다. 끊임없이 시시콜콜한 얘기를 반복하신다. 평소 얘기하고 지낼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얘기를 하고 종종 미안해하신다. 이미 충분히 너무 넘치게 잘해주고 계시는데. 가끔 얘기의 맥락을 놓치고.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넘어가신다. 신체적 변화는 무릎이 불편하신 게 큰데 어디 오래 걷기는 이미 힘들다. 그렇지만 엄마는 밝다. 순수하다. 여전히 현명하다. 엄마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계신다.
그리고 남은 사흘은 고향에서 보내고 있다. 엄마는 끊임없이 먹을 걸 챙겨주시느라 앉을 새가 없고. 아버지는 종일 TV를 보신다. 마침 폭설이라. 어디 가볍게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거라. 명절과 폭설이라는 명분하에 우리 가족은 고립돼 있다. 안다. 그래도 다 큰 자녀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고 안정감을 느끼시는지는.
그냥 가족과 있다 보면 소파에 누워. 혹은 바닥에 배 깔고 누워. TV를 보고 하루를 보낸다.
종종 맥주를 놓고 유튜브 음악 틀어놓고 언니와 수다의 장을 열기도 하는데. 전반적인 느낌은 무기력과 무료함이다.
이번 연휴는 게다가 눈이 펑펑 내려서. 밖에서는 교통 대란에 사고에 난리지만. 이미 시골에 내려온 우리는 고립감이 가져오는 편안함이 더 큰 편인데. 나는 가져온 책(양귀자 '모순'..)도 다 읽었고. 이제 다른 책을 꺼내 들었지만. 무기력과 무료함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럴까봐. 마지막날 템플스테이도 예약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부모님 걱정이 태산이시라. 결국 연기 신청을 했다..
그냥 명절이란.
가족과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바닥에 붙어 TV 보고 낮잠 자고 뭐 좀 꺼내 읽다가 수다도 좀 떨었다가. 하는 것일 텐데. (실제 수다라는 것은 같이 있다가 무료함이 극에 달하면 이 얘기 저 얘기 오랜만에 해보는 결과 같은 것인데.) 간간이 낮잠 자는 가족의 무기력함을 지켜보기도 하는 것일 텐데. 이 편안한 순간이 좀 답답함으로 오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많으니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은. 이제 곧 출근인데. 출근하면.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금 잘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같이 온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잘 보내면 좋은데. 이미 가족과 함께 차례 지내고 안부를 묻고 맛난 음식을 나누고. 이러려고 있는 명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