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집
라이킷 52 댓글 25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난다.

그게 너라서일까 아니면 나라서일까

by Wishbluee Feb 17. 2025

분명 즐겁게 독서모임을 끝내고 온 터이다.

어둡게 느껴지는 인생의 터널을 밝히는 빛을 한 줄기 안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둘째 아이 전용 김밥을 말아놓았고,

큰 아이가 깨어나 있으면 휘리릭 점심을 차려줄 생각이었다.

콧노래가 나올 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여니. 일어나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큰아이가 보였다.

스터디 카페를 매일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걸까, 기특한 마음에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잘 일어났네?


그런데 눈빛이 사납다.

착각이겠지


-점심에 볶음밥 해줄까?


-하아... 그래.


칠판을 긁는 분필소리 같은 목소리.

대답인 건지 비꼬는 것인지

더 나은 선지를 내놓지 그래? 채근하는 것 같다.

큰 아이에게 매번 나는 식사 때마다 시험을 치는 기분이다.


갑자기 팍 기분이 상했다.


삶아둔 야채를 꺼내고 중식도를 들었다.


작은 아이는 콜레스테롤 문제를 갖고 있다. 늘 식사에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데, 방학이라 너무 버거웠다. 어제는 친구를 만난 탓에, 더욱 조심하지 못했다. 불안함이 밀려들어왔는지 아이가 스스로 먼저 오늘은 야채만 먹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겨우 만 열 살짜리 아이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시련이다. 며칠 전 삶아둔 야채와 고기를 꺼내 김밥을 싸주었지만, 아무래도 맛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먹는 폼과 속도가 느릿느릿하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더 맛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늘. 늘.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이것이 노력의 한계치다. 그래서 그냥 먹는 것을 가만 바라보았다.


큰 아이가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큰 아이는 식성도 까다롭고, 잘 먹지도 않아서 마르고 작다.


마라탕, 치킨, 빵...

어쩔 수 없이 늘 사다 주고 시켜주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건강이 괜찮을까? 하는 염려가 사라지지를 않는다.

지금은 시간도 없고 하니, 삶은 야채를 이용해서 휘리릭 볶음밥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어서 물어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 내 상황에서의 최선은 늘 무시당한다.


중식도를 들고 삶은 야채와 고기를 다지다가, 김치가 들어가면 더 맛나겠다. 맞아 큰애는 김치볶음밥은 잘 먹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본다.


-김치볶음밥으로 해줄까?


드라이기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는지 잠시 끄고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뭐?


-김치볶음밥으로 먹을라냐고~


-아니


표정에 짜증과 어쩌면 멸시까지도 묻어있는 것 같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껴진다. 서럽다. 속상하다... 그러다가....


어느새 야채를 다지는 중식도를 쾅쾅 내리쳤다.


분명 볶음밥을 맛있게 해서 내놓아도, 바로 먹지 않을 거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몇 번을 먹을래 안 먹을래 시시비비를 가린 뒤에서야 한 두 수저 먹고 버려둘 것이다.

알면서도 나는 왜 한 그릇 볶음밥을 해다 바치고 있지.


열받는다.


-너 먹을 거지?


다시 머리 말리다가 말고, 아까보다 한껏 더 인상을 쓴 얼굴로


-먹을 거야.


낮게 목소리를 깔고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말린다.

위이 이이이 잉. 드라이기 소리.

눈은 핸드폰에 고정되어 있고,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너무나 괘씸하다.


나갔다 오자마자 급하게 앞치마를 둘러메고 서둘러 점심을 만들고 있는 나는 잔소리쟁이 식모일 뿐이다.


격하게 화가 치밀어 오르자,

생각보다 세게 중식도를 내려치게 되었다.

야채를 다듬는 게 아니라 화를 발산하는 못난 에미 짓거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둘째가 놀란 토끼처럼 깜짝 놀라, 방 안으로 도르르 사라져 버린다.

나는 정신줄을 가다듬으려 노력하며

잠시 중식도를 내려놓고 등을 돌려세워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아이가 저런 말투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오늘따라 서럽고 화가 난다.

다 참아낼 공력이 된 줄 알았는데 반복된 폭력에 노출이 된 것 같다.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이 수치스러운 순간들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참아야 하는 것일까.

매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게 버거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처절하게 노력을 해도, 저 눈빛. 말투 의도가 있든 없든. 나는 그것에 하염없이 무너지고 만다.

뭐라고, 저 어린아이. 그냥 사춘기 아이.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저 녀석의 예민하고 짜증스러움 하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저 정도가 뭐라고. 다 큰 어른인 내가. 엄마인 내가.

아. 한심하다.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차오르는 감정을 오늘은 내려놓지 못하겠어서 습, 습, 후, 후.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음아 참아. 이건 너무 어린애 같은 행동이야.

내 마음아, 제발 진정을 해. 왜 이래.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그냥 귀여운 사춘기 아이의 투정일 뿐이야.

네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어야지. 너는

엄마잖아.

엄마는 기둥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잖아.


볶음밥을 해서 올려놓는다.

도마에 칼자국이 선명하다.

씁쓸하다.


-안으로 들여보내줄까

-아니

-너, 먹을 거야?

-어. 먹는다고.


다시금 차올라오는 감정.


독서모임에서 추천해 준 윤종신의 '내리막길'을 들어 본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아름다운 가사일 텐데.

가사를 읽어본다.

들어오질 않는다.

오로지 차가운 분노와, 서러움만이 마음속에 찰랑거릴 뿐.

도대체 사람의 마음은 왜 조절이 안 되는 걸까. 하필이면 그게 왜 지금 이 순간 나 일까.

표정이 굳어진다. 석고를 부은 것처럼. 딱딱하게.

내가 기계면 좋겠다. 내 심장도 강철로 만들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마음이라는 것이 도려내어져서 바닥에 버려질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큰 아이는 아마도 숙제가 밀렸다.

학원 시간이 급하다.

그러니 짜증이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알면서도 이해하면서도 서운함과는 다른 침울한 우울감에 사로잡힌다.

요즘,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익사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길고 긴 사춘기의 터널이 드디어 끝나가나 싶었는데,

자꾸만 고개를 드는 그 눈빛. 눈빛. 그 말투. 그놈의 말투.

어린놈의 애새끼한테

왜 이렇게 분노가 주체할 수 없이 몰려오는 것인지.


분명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는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또 글을 쓴다.

다시금 사랑을 찾기 위해서,

단지 지금 이 한 장면으로, 내 인생에 너라는 예쁜 꽃을 도려내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또 노력을 한다.


내 못난 마음 지켜보느라 주눅이 들어버린 둘째를 불러, 꼬옥 껴안고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한다.

힘주어 안으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여린 몸이 얼마나 떨렸을까.


큰 애는 간다는 말도 안 하고 문을 열고 차갑게 사라져 버렸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예쁜 도마를 새로 사 볼까.

힐끗 생각해 본다.


식탁위에는 역시나 먹다 만 볶음밥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undefined





나도 잘한 것 하나도 없다.

네가 모지른 에미랑 사느라 고생이 많다.

그래도 오늘을 추스르고 다시 나아가려고 글을 쓴다.

쓰자. 읽자. 견디자.

애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네 마음은 네가 다스려볼 수 있잖아.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멀었지만,

수업료를 계속 지불하다 보면.

발 끝 정도는 쫓아가 볼 수 있겠지.


-자아의 전시 일지도 모르지만 글로 쓰니 마음이 진정되어감을 느낍니다.

-한심하지만, 이게 나인 걸요.. 어쩌겠어요.

-기록했다가, 못견디겠으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덜 여문 이파리도 나라는 나무의 일부분이니까 남겨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에서 혼자 있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