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고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한 가지, 그것은 입덧이다. 하루 24시간 차멀미에 시달리는 느낌 혹은 지독한 숙취로 고통받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입덧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p110 '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안지선 작가님 글 中
아홉 명의 작가님들과 일 년 동안 정겹게 빵에 관련된 주제 (줄여서 빵제)로 쓰던 글을 쌓았다. 각기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모이자, 하면 장소에 상관없이 바로 모이는 집합력을 보였다. 마침내 빵의 성역, 성심당에서 모여 즐겁게 빵을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쌓아온 이야기들이 너무 좋다는 말이 오갔고, 그 말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브런치 독서클럽 라이브를 켜두고 책을 천천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함께 읽고 또 읽었던 이야기들인데도, 책이 되어 돌아오니 너무나 새로웠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한 자, 한 자 음미하면서 다시 한번 모두의 인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안지선 작가님의 임신기간 에피소드를 읽었다. 그리고 나의 입덧이 떠올랐다.
지선작가님은 입덧이 무언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나 묘사는 정확하게 하셨다. 차멀미, 숙취. 맞다.
그렇다면 나의 입덧은 어떠했을까.
2007년 얼렁뚱땅 임신을 했다. 사랑이 뭔지. 희생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아직 20대의 끝자락에 있었고, 친구들은 모두 한창이었다. 결혼, 임신, 출산.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데도 그 세 단어가 내게는 아직도 어렵기만 했다.
덜컥 임신을 했다. 임테기를 믿을 수 없어서, 다시 병원에 가서 확인을 했더니 임신이 맞단다.
기뻐서 춤을 춰도 모자를 판국인데 나는 그냥 어안이 벙벙했다. 같이 병원에 간 엄마가 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반응이 서운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 왜 그랬는지 따져 물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표정이 바로 걱정이었다는 걸 입덧을 시작하고 나서 알았다. 엄마는 내가 고생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본인이 그랬으므로.
처음에는 냉장고 냄새가 싫었다. 그러다가 음식을 못 먹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탄천 앞에 있던 복도식 아파트였던 신혼집에서는 유독 물냄새가 심하게 났다. 물이 싫었다. 그래서 물도 못 마셨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울렁거렸다. 너무 못 먹으니 몸은 볼품없이 말라갔다. 그때 내 몸무게는 38킬로 까지 빠졌다. 앙상해져서 걷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루에 사과 반조각 정도였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포부는 나와 먼 이야기였다. 그저 이 힘든 입덧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남편이 곁에 오면, 남편한테서도 냄새가 났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와중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남들은 태교로 바느질도 하고, 예쁜 동화책도 읽어주는데 내가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소파에 누워서 하루가 끝나기만을 기도하는 거였다.
다행인 것은 그 입덧이 영원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느날 부터 천천히 음식이 먹히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갚아주고 싶어서였을까,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빠진 내 몸무게가 마치 내 빠진 사랑 같았다. 허겁지겁 먹다가 비록 화장실로 달려가 모조리 게워내더라도, 내가 먹는 것이 아이에게 간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애송이는 그저 더듬더듬 그게 사랑인가 보다 하며 임신기간을 건너왔고, 마침내 천사 같은 아이를 만났다.
임신과 출산을 옆에서 지켜본 남편은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도 처음 겪어본 일들 투성이었을 텐데, 기댈 곳 없던 초보임산부였던 나는 남편에게 참 많은 투정을 부렸다.
남편에게 먹고 싶은 과일을 사달라고 했는데, 그는 끝끝내 그걸 사다 주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시간이 한밤중이기도 했고, 제철과일도 아니라서 구할 방법도 없었다는 게 반전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마저 몹시 서러웠다. 한밤중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남편은 무조건 뛰쳐나가서 어떻게든 구해오는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드라마에서 연출된 사실이 진실인 줄 아는 인생경험 초급, 애송이 임산부였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초보아빠 역시, 마음이 상해버린 초보엄마를 달랠 경험치는 없었다.
지선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잠시 과거로 여행을 했다. 입덧기간으로 가서 그때의 내 마음을 살피고, 나아가 나를 지켜보던 남편의 마음까지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언젠가 지선작가님이 추천하던 그 와플집에서 과일와플을 함께 나누어 먹을 날이 오면, 그 한 입으로 작가님의 2007년과 나의 2007년을 동시에 여행할 수 있을 것만 같다.
https://brunch.co.kr/@sunny-room
저와 함께 글을 쓴 안지선 작가님의 브런치입니다.
따뜻한 햇살이 드는 방에 기대어 작가님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