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될 것을.

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by Wishbluee
보드라운 핑크빛 아기 머리 위로 시나몬 가루가 후두두 떨어지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청결에 예민해져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직 나와 빵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가방에서 가제 손수건을 꺼내 아이 머리 위에 펼쳐 두고, 흰 손수건 위에 계핏가루가 잔뜩 떨어지도록 마음껏 먹었다. 턱 바로 아래에 있는 아이의 머리를 피해 가며 부지런히 포크질을 했다. 혼자서 그 큰 빵 한 개를 다 해치우고 나서야,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나섰다.

P174 '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박수진 작가님 글 中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엄마들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곤 한다. 욕망을 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는 엄마의 사정을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하고, 잠이 와도 참아야 한다. 심지어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아무리 예쁜 내 새끼라지만, 현저하게 떨어지는 삶의 질을 '예쁨 하나'로 버텨내기에는 견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잠시라도 그 욕망에 지는 순간, 반드시 죄책감이 따라온다. 그 감정은 정말이지 매번 감당하기가 어렵다. 육아에 타협은 없기 때문이다.


박수진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쩌면 오래전 나는 이미 수진 작가님 옆에 서서, 허겁지겁 나만의 허니 점보 브레드를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성'


나는 아이를 가지면 바로 모성이 내 몸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생겨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성'은 호르몬의 한 종류가 아니었다.


엄마는 늘 아이를 보며 미소 짓는다. 정갈한 옷차림, 깨끗한 집,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면 아기는 새근새근 잠이 든다. 엄마는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토닥토닥, 다시 한번 아름답게 미소 지은 뒤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책을 편다.

—어느 드라마 속 엄마.


하지만 아무리 동화책을 읽어줘도, 자장가를 불러줘도 아기는 절대 잠들지 않았다. 아기는 내가 움직일 때만 잠이 들었고, 동작을 멈추는 순간 큰 소리로 울어댔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며 흔들침대에 돌아가는 모빌에 꽉 묶어주는 속싸개까지. 문턱이 닳도록 벼룩시장을 들락거리며 중고 물품을 사 모았다. 안타깝게도 그 어떤 도구도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의 살결, 움직임만이 아기를 안정시켰다.


결국 온갖 시도 끝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나는 결국 내 신체에 대한 권리를 내려놓고 인간 요람이 되었다. 남편이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소파에 아이를 안은 채 "다녀와요" 인사를 했고 저녁 9시에 퇴근하면 그 자세 그대로 남편에게 "잘 다녀왔어?" 인사를 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심지어 싸는 것에 대한 자유도 그냥 내던져 버렸다. 그게 바로 엄마가 되는 '관문'이었다.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그래서 차라리 나를 포기해 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결국 그것도 내 선택이었지만, 선택했다고 해서 덜 힘든 건 아니었다.


'힘듦'을 털어놓으면 온갖 오지랖이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쏟아지는 충고와 조언 속에 느끼는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들이 가리키는 한 단어. '무능한 엄마'.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그때는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얻어맞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어쩌면 다정한 공감의 따뜻한 말들도 섞여 있었을 텐데, 그 많은 메시지 중에서 나는 꼭 날카로운 것들만 골라서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드라마 속 '그'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고, 그런 엄마가 되기를 바라는 게 내 욕심일 수 있다는 것조차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그런 엄마가 아니면 어디 가서 '아이엄마'라고 불릴 수 없다고. 엄마 자격이 없는 거라고. 그렇게 무의식 중에 믿고 있었던 걸까.


참 힘들었다. 그런 감정들의 파도를 견뎌내며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조금씩 알 수 있었다. 그 순간들의 모음이 바로 모성이었다는 걸.


가끔씩 아이를 가슴팍에 매달고 어두운 표정으로 걷고 있는 젊은 애기엄마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 아이를 어찌 다뤄야 할지 몰라 길바닥에서 절절 울고,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외치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너무나 무겁고 때로는 버거울 그 어깨를 붙잡고, 허니점보 브레드는 건넬 수 없어도, 작은 초콜릿 하나 정도는 손에 꼭 쥐어주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가 참 예쁘다고. 바로, 당신을 쏙 빼닮아서.




발랄한 그녀의 글을 읽으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병 밖을 나온 루기, '박수진' 작가님의 브런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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