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맘 먹고 말이지. 그런데 나 가요, 말아요?
1월에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몇 년 전, 런던 한 달 살기를 막연하게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접고 접다 못해 구겨서 휴지통에나 던져야 할 꿈으로 남아버렸다.
큰 아이 고학년. 너무 좋은 기회였던 그 시기를
그놈의 전염병이 휙 가져가 버렸다.
몇 년 후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그때의 괴로웠던 격리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발걸음을 많이 옮겼는데, 올해는 엔저 현상으로 인해 목적지를 일본으로 정하는 사람들이 많앗다.
하필이면 두 녀석들 최측근 친구들이 죄다 일본, 그것도 오사카를 갔다 오는 바람에 두 녀석 다 여행병이 났다.
우리 집 가난 하나며, 제 부모를 은근히 살살 압박도 하고 간도 보고,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어찌나 내비치는지. 귀엽기는.
둘째 친구는 유니버셜에서 사 온 필통으로 쉬는 시간마다 놀이를 한다고 한다.
친구야. 그거 비싼 걸로 아는데... 집에 모셔두지 그러니?
그래서 결국 없는 돈 있는 돈 싹싹 긁어모아, 모자란 것은 빚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1월에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다.
큰 아이 고1 겨울방학. 이번에야 말로 정말 어쩌면 아이들 학령기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눈을 딱 감고 결정했다.
현재 비행기표만 사두었고, 하루에 백만 원 남짓 돈을 써야 하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어트랙션 탑승권을 포함한 입장권, 확약권 등등은 구매해두지 않은 상태이다.
이제 슬슬 사야겠다. 무슨 놈의 일본 여행을 가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나 싶으면서도 마지막 여행이다 싶어 4박 5일이나 되는 긴 기간으로 잡아 두고서는, 아이 학원이라느니 보강이라느나 하는 것은 그냥 생각지 않기로 했다. 내 딴에는 정말정말 큰 마음을 먹고 한 결정이다.
자. 이제 남은 것은 가서 먹을 것, 구경할 것, 쇼핑할 것들을 찾아보면서 하루하루 어떻게 즐겁게 보낼지 계획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 그래. 나는 그냥 그렇게 즐거운 한 달을 보낼 계획이었다.
책 읽고 글 쓰면서 틈틈이 일본여행을 준비하는 그런 피곤하지만, 즐거운 한 달 말이다.
그런데, 자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더니
이게 해결이 안 되네.
2024년 겨울밤이 도대체 끝날 생각을 하질 않네.
당연히 그날 밤 하루로 다음 날 모든 것이 정리될 줄 알아서,
여행을 가네 마네 고민할 앞날은 내 계획에 없었는데 말이지.
아직 여권도 갱신 안 했는데,
나라가 망하는 건지, 걱정을 해야 하게 생겼네.
며칠 밤이 지난 오늘, 드디어 그 걱정을 끝내나 했더니.
앞으로 또 며칠 밤을 아슬아슬하게 보내야 하게 생겼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그냥 내 일상의 계획을 진행하게 두면 안될까.
전염병이 방해하더니 이번에는 국가적 재난이 방해를 한다.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결국 나 같은 소시민이 지켜야 할 것은 너무나 별 것이 아닌 이런 일상이다.
겨우겨우 돈 모아서, 꾸역꾸역 준비를 해서, 간신히 한번 비행기 타서 가까운 일본이라도 가서
애들 소원 들어주고, 가족끼리 오붓한 한 때좀 가져보는 거.
그냥 그런 거.
에라 모르겠다. 나 질렀어! 하고 여기저기 떠들어 대고,
다녀와서는 주변에 소소한 선물을 나누어 주면서
이 소리 좀 해 보는 거. 어린 시절에 비하면 황홀할 정도로 올라간 대한민국의 격을 이제 좀 느껴보나 했더니
온갖 외신에서 우리를 불쌍해하는 이 꼬락서니 이거 뭐지.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엔저인데, 우리만 엔화 비싼거 이거 어이없는데, 어쩔?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된 게 실화?
그래서, 나 가요 말아요.
어떡해
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돈 내, 말어. 백만원이나 된다고요.
대답 좀 해보세요. 네?? 가지 마시고. 대답 좀 해보시라고요.
이리 와 앉아보셔. 앉아보시라고요.
오늘은 발행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냥 울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