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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May 30. 2024

남편이 죽었다.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무얼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편을 보낸 지 3개월이 지났다. 남편은 7년간의 고된 백혈병과의 전투에서 2월 마지막날 졸업을 했다. 인간적으로 봤을 땐 막상막하의 어쩌면 어느 순간엔 우세한 싸움이었다가 또 마구 뚜드려 맞다가 결국엔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단 하나의 육체를 보았을 땐 더 이상 아픔이 없다는 것. 모든 고통으로부터 놓여 자유 로워 졌다는 것이 세상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남겨진 나와 8살 딸아이에겐 하루하루가 너무 무겁게 지나고 있다. 장례를 끝내고 집에 왔는데, 남편의 모든 것이 그대로 있고 남편만 없다. 심지어 화장실 하얀 비누에 남편의 짧고 얇은 머리칼이 붙어있는 걸 보고는 비누를 들고 한참 울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인지 나이 마흔에 과부가 된 내가 불쌍해서 인지 밤마다 아이가 자고 나면 눈으로 올라오는 끊임없는 물을 닦아내는 게 내 일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고, 삼키는 침에도 쓴 맛이 나서 삼키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가 없었으면 굶어 죽기 딱 좋은 상태였다. 그래도 아이 때문에 끼니를 준비해서 먹어야 하니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고 있다. 

이제는 입맛도 돌아오고, 잠 도 규치적으로 잘 수 있게 되었다. 이제 5월이 원래 이렇게 찬란하게 아름다웠는지가 보인다. 참 곱고 예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눈부시다. 

여전히 몇 글자 적는 지금도 눈물이 나고 아이와 남편의 흔적들을 나누며 울고 또 지인들의 따스한 위로에 울고 대답 없는 남편에게 말을 걸다 울지만... 나 와 아이는 꾀나 잘 훌륭하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실 중에 끝판왕이 '죽음' 이라던데.. 그 끝판왕을 깨고 있는 지금이 나를 더 강하고 단단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죽음을 일찍 경험했기에 더 잘 죽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은근히 생긴다. 

남편이 떠나기 전 일주일은 병원에서 오롯이 둘이 보냈다. 많은 시간 자고 있었고 기저귀 갈 때, 아침에 물수건으로 세수와 샤워할 때, 약 챙겨야 할 때만 잠깐 소통할 수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자기 생명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스러져 가면서도 눈 마주칠 때마다 내가 식사를 했는지를 챙기는 남편이 고마웠다. 

죽는 게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힘 없이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너만 괜찮으면 다냐! 화가 났지만 남편이 죽음이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보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모습에 마지막으로 반했다. 

결혼하고 6개월 만에 혈액암 판정을 받고 7년 동안 투병 하며 매일 약해지는 남편을  도우며 많이 지쳤지만 내가 결혼하기로 결정했던 그 당당하고 용기 있던 남자가 맞네.. 사람 안 변한다더니 한결같아 고맙다고 느꼈다.

어제는 운동을 등록하고 왔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해지고 그래야 내가 나를 그리고 나 보다 소중한

내 아이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남편 없이 아빠 없이 보내는 시간과 상황에 점점 더 익숙하고 의연한 우리가 되길 바라고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길  누구보다 바라는 남편의 바람이 슬프지 않게 그렇게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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