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야! 너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린 싸웠어. 너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너의 인생 목표가 '남'이라는 실체 없는 존재가 가진 것보다 더 비싼 가방, 비싼 차, 강남 아파트를 갖는 것 같았어. 나는 그런 너를 비난했고 넌 화를 냈지. 넌 그게 뭐가 그렇게 나쁘냐고 물었지. 나도 확실히 반박하진 못했어. 돈으로 각자 하고 싶은 게 다를 수 있으니까. 네가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좌절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너의 욕망을 비하했어.
T야! 모나코는 C라는 사람 때문에 가게 됐어. C가 누구냐면, 같이 여행 간 친구의 사촌누나의 전 남자 친구야. 모나코 사람이지. 우리가 여행 가기 전만 해도 둘은 6년씩이나 사귀고 약혼한 상태였다는데 우리가 여행 갈 때쯤 되어 헤어졌대. 원래는 두 사람을 모나코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친구의 사촌누나는 원래 살던 베를린으로 돌아갔기에 베를린에서 만났고 C만 모나코에서 만났어. C가 한국에 왔을 때 내 친구의 가족들이 그에게 잘 대접해 주었대. 그래서 우리가 갔을 때 C는 우리에게 잘 대접해 주었어. 너무 잘 대해줘서 불편했어.
친구와 나는 니스 공항에 도착했어. C는 모나코 헬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에 우리가 니스 공항에서 모나코까지 올 수 있도록 헬기를 준비했어. 착륙장에서 C를 만났고 C는 번쩍이는 차에 우리를 태워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어. 가는 길에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디자인의 차가 많이 보였어. 바닷가에는 영화에서 보던 고급 요트가 정박해 있었어. 대부호들의 별장 나라 답다고 생각했어. C의 아파트에 도착했어. 집은 2~3명이 살기 적합한 크기에다가 고층이라 창밖으로는 바다가 훤히 보였어. C는 우리에게 모나코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어. 친구랑 나는 별 생각이 없었기에 서로 얼굴만 겸연쩍게 쳐다봤지. 그러자 C는 자기에게 다 맡기라며 일단 자신의 친구들과 요트를 타러 가자고 했어. C의 친구들 세 명이 나왔어. 그중 한 명이 요트 주인이었고 그분이 요트를 운전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세웠어.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었어. 배 위에서 일광욕도 하고 사진도 찍었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는 저녁을 먹으러 갔어. 야외 자리가 있는 분위기 좋은 식당이었는데 메뉴판을 보고 너무 놀랐어. 정확히는 가격을 보고 놀랐지. 음식값은 다 C가 냈고 친구와 나는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어. 촌스러워 보일까 봐 음식 사진도 못 찍었어. 밤이 깊어지고 C는 우리를 유명한 클럽에 데려갔어. 그의 친구들도 다시 왔지.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오는 클럽이래. 거기서 U2의 보컬 보노도 봤어. 그다음 날엔 늦게까지 잤어. 날씨가 흐려서 밖에 나가기도 싫었지.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C가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 했어. 모나코는 매년 열리는 그랑프리 때문에 드라이브 도로가 잘 뚫려있댔어. 그를 따라 주차장으로 갔는데 날렵하고 세련된 스포츠카가 있었어. 달릴 때 굉음을 내던데 경주용 차인가 싶기도 해. 차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냥 탔어. 밤이 되어서는 저 멀리 바다 위에서 배를 띄워놓고 누가 불꽃놀이를 하더라고. 우린 C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그 모습을 구경했어. 그다음 날은 C도 일하는 날이라 친구와 나는 버스를 타고 니스에 갔어. 바닷가에 누워도 보고 광장 산책도 하고 샤갈 미술관에서 전시도 봤어. 햇빛이 잘 드는 야외 테라스 식당에서 저렴한 피자를 먹는데 참 마음이 편하더라. 우리 둘은 지난 이틀을 돌이켜봤어. 어쩌면 생애 두 번 다시없을 호화로운 이틀이었는데 왜 그리 마음이 불편했을까. 엄청난 호의를 받아서 그랬을까. 그의 삶과 그의 나라에서 발견한 부유함이 낯설어서 그런 것일까.
이런 부의 낯섦, 한국에서도 경험한 적 있어.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회장 친구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 날 초대했어. 초대받은 다른 친구들은 다들 각자의 어머니들이 그들을 그의 집에 데려다줬고, 난 그의 어머니 차를 얻어 타고 그와 함께 그의 집에 갔어. 우리 엄마는 운전도 못할뿐더러 일하느라 바빴으니까. 친구 집에 들어갔는데 정말 넓더군. 거실 한쪽에는 큰 게임기가 있었어. 큰 화면에 현란한 광선이 아른거렸지. 초대받은 친구들은 번갈아가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어. 난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그 게임기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았어. 널찍한 소파에 혼자 앉아서 조그만 게임기를 집었어. 흑색의 점으로 표현된 화면에서는 큰 비행기가 반대편에서 오는 비행기에 미사일을 쏘고 있었어. 집에 가기 전에 화장실을 들렀는데 거기서 정말 충격을 받았어. 화장실 크기가 우리 집 거실만 했거든. 심지어 좋은 향기도 났어. 집에 올 땐 그 집 기사님이 나를 리무진 같은 차로 태워다 주셨어. 차 가죽 냄새 때문에 울렁이는 속을 간신히 참았어. 그날 밤, 녹초가 되어 집에 온 엄마에게 내가 말했어. "엄마, 걔네 집 화장실이 우리 집 거실만 해."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T야! 부에 대한 감정은 정말 미묘해.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어려운 근현대사를 겪었지.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을까. 우리 사회에는 돈과 부에 대해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사람들은 부를 욕망했지.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어. 아빠가 어릴 때부터 지게 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진절머리 나게 들었어. 그러면서 계층 이동을 꿈꿨겠지. 물론 어느 사회든 계급을 나누지 않는 사회는 없을 거야. 그런데 단기간에 가난에서 탈피했기 때문일까, 노력의 결과를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걸까, 오랜 군사독재정권의 영향일까.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서로 숫자와 순위를 매겨 상대보다 더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또, 비교하되 너무 떨어져서도 너무 튀어서도 안되지. 일례로 우린 비슷비슷하게 지어진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해. 가격 비교하기 쉬우면서 지역마다 편차를 나눌 수 있으니까. 똑같은 주거 형태에서 남들과 다른 은근한 차별점을 보여줄 수도 있어. 그런 상태에서 이제는 대놓고 자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어. 실물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일순간에 '벼락 거지'가 되고 어린아이들 사이에서까지 '임거, 월거, 전거'라는 희한한 말들이 돌아다녀. 사람들의 욕망은 들끓는데 정부는 인간과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욕망을 부추기지. 이런 세상을 보는 나의 감정은 매우 불편해.
세상에, 그땐 미처 몰랐어. 8년이 지난 지금 내가 모나코에서 맛봤던 그런 삶을 꿈꾸고 있을 줄이야. 바닷가가 보이는 집에 살면서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삶을 꿈꿔.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면서 돈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삶을 꿈꿔. 더 이상 부를 낯설게 느끼고 싶지 않아.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더니, 나도 자본으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을 보며 부에 대한 나의 욕망을 깨달았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본이 필요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가 낯설어. 돈을 모으고 불리는 과정이 재밌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 집착하는 나를 볼 때 괴롭기도 해. 나를 남과 비교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해. 내가 소외되거나 내 존재가 남에게 박탈감을 주게 될까 봐 겁나. 내가 너의 태도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점도 바로 이거야. 넌 타인과 너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면서도 네가 가진 걸 은근히 뽐내면서 타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도했지. 너의 욕망을 인정해.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너의 욕망이 너를 공격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의미에서 커피잔 뒤로 슬쩍 명품 가방을 보이게 찍은 너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정말 보기가 싫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