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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Oct 28. 2022

열정이 식어버린 O에게

2018.7.1 에티오피아 다나킬 에르타 알레 화산에서

 안녕 O! 벌써 우리가 일을 시작한 지도 7년이 넘었구나. 일반 기업에 다녔으면 대리급 연차인가. 넌 일이 너무 지겨워서 다 때려치우고 싶다 했지. 열정과 패기로 일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고 노련하게 일을 책임지기엔 약간은 부족해 보이는, 뭐든 적당해서 권태로운 시기 같아. 이전의 열정과 노력이 그리워. 초반의 나를 본 누군가는 나에게 성장하는 나무, 태양, 용암 같은 것이 떠오른다고 했어. 그분이 지쳐버린 요즘의 나를 보면 무엇을 연상할까.



 O! 에티오피아에서 활화산에 오른 적이 있어. 메켈레라는 도시에서 화산 밑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어. 햇빛이 강하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기온이 높았어. 온도계를 봤는데 52도였나. 땅에서 열이 올라오는 건지 더운 바람이 계속 불어왔어. 건조해서 계속 입술이 말랐어. 땀은 안 나는데 계속 물이 먹혔어.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더위였어. 그런데 그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더라. 캠프까지 가는 마지막 2시간 정도의 구간은 온통 울퉁불퉁한 돌길이어서 차를 타고 가는데 몸이 위, 아래, 앞, 뒤, 옆으로 계속 흔들렸어. 가이드는 이 길을 아프리칸 마사지라고 불렀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어.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었어. 국경과 가까워서 그런 것 같아. 땅 검은 모래가 깔려 있었고 하늘은 회색이었어. 우린 저녁을 먹고 화산에 올랐어. 검은 모랫길을 지나자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진 거친 바위길이 이어졌어. 바위 울퉁불퉁해서 발바닥이 금세 아파왔어. 물 2병을 챙겨갔는데 가는 내내 물을 먹었어. 모래와 유황 가스를 막기 위해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는데, 건조한 바람 때문에 손수건이 말라 계속 물을 적셨어. 어두워져서 랜턴이 필요했어. 여길 낮에 올랐으면 탈진했을 거야. 한 3시간 정도 올랐나. 분화구 근처에 마련된 캠프까지 왔어. 가까운 곳에서 붉은색 연기가 피어올랐어. 분화구로 갔어. 가이드가 용암을 찾았지만 바람 때문에 용암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어. 우린 분화구 근처에서 사진 찍으며 놀다가 캠프가 있는 곳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어. 화산재와 가스를 이불 삼아 잤어.



 다음 날 새벽 4시, 가이드가 우릴 깨웠어. 주에서 자던 사람들이 기침하고 난리였어. 다시 한번 분화구로 갔어. 바람은 여전히 심했고 가이드는 열심히 끓어오르는 용암을 찾았어. 분화구를 향해 아슬아슬하게 나 있는 뾰족한 암석 끝으로 가이드는 우리를 한 명씩 안내했어. 그리고 봤어. 면적은 작았지만 연기 사이로 흐르는 노랗고 붉은 용암을. 처음엔 고양이 눈처럼 작고 노란 점이 보이다가 다시 연기 속으로 사라졌어. 곧 검은 바위가 만든 틈이 드러나고 그 사이로 노란색, 주황색 셀로판지를 댄 듯한 단조로운 색이 칠해졌어. 바람이 한 번 세차게 불고 나자 이윽고 홀리듯이, 빨려 들 듯이, 상류 근원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물의 물결과도 같이 세차게 마그마가 흘렀어.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것이 아쉬웠어. 심장이 두근거렸어. 아프리카 여행은 자연의 온갖 색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이었는데, 용암의 색채는 화룡점정이었어. 그리고 다시 험난한 길을 내려와 열기를 식히고 화산재를 씻어냈지.  



 O! 이 짓 다신 못해.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타오를 때가 있어. 여러 번 타오를 수도 있고, 한 번만 타오를 수도 있고, 아예 타오르지 않을 수도 있어. 타오르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고 그 분출은 곧 식어서 검은 산을 만들어 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내. 너무 더워도 힘들어. 우리 안에 꽁꽁 숨겨진 거대한 동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우리의 열정이 식어서 만들어진 이 지루한 길을 누가 발판 삼아 걸어갈지도 한 번 지켜보자.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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