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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Oct 25. 2022

서로 못하는 이야기가 없는 친구 J에게

2018.6.24 탄자니아 세렝게티 한복판에서

  안녕 J야! 너와는 정말 시답지 않은 이야기부터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없지.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한 존재이긴 하나 고난과 고민이 가득한 우리의 삶에서 서로가 없으면 또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J야! 7명의 친구들과 3박 4일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를 하게 되었어. 국립공원 내부가 엄청 커서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어. 첫날 우리는 코끼리, 품바, 독수리, 원숭이, 치타, 얼룩말도 보고 캠핑장도 깔끔해서 한껏 들떠 있었지. 둘째 날은 표범과 다수의 사자 무리도 봤어. 캠핑장에는 전기가 안 들어왔어. 샤워실엔 징그러운 벌레들이 많았고 온수가 안 나와서 찬물만 살짝 끼얹었어. 셋째 날은 '라이온 킹'의 주제가 'circle of life'를 틀어놓고 세렝게티의 일출을 봤어. 표범이 나무 위에서 먹이 먹는 모습, 그 아래에서 남은 고기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하이에나의 모습을 봤어.





 문제가 시작되었어. 길을 가는 도중 왼쪽 뒷바퀴가 터졌어. 한참 멈춰있었는데 지나가는 다른 차량 운전수가 타이어 복구를 도와주었어. 다시 출발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뒷바퀴가 터졌어. 운전수는 무전을 쳤어. 마침 차 밖에는 먹이를 먹는 사자와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하이에나가 있어서 우린 지루하지 않게 기다렸어. 다른 차량의 도움으로 보조 타이어를 갈고 다시 출발했어.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또다시 타이어가 터졌어.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람들이 도와주러 왔지만 그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어. 캠핑장에 도착하지 못한 채 밤이 되었어. 가이드는 우리가 오늘 여기서 자게 되었다고 했어. 야생동물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세렝게티 한복판에! 우린 당황했는데 요리사는 흥얼거리며 차에서 내려 요리를 시작했어. 우리는 텐트를 친 뒤 요리사에게 핸드폰 불빛을 비춰주었어. 어찌어찌 저녁을 먹고 남은 물로 양치도 했어. 가이드는 주변에 사자가 보인다고 했어. 우린 급히 텐트 안으로 들어갔어. 사자가 우리의 텐트를 덮치는 상상을 하니 무서웠어.



 배가 너무 아파서 깼어. 시간은 12시 반. 밖에는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고 내 괄약근은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었어. 거의 1시간 가까이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경험했어. 결국 생리적 욕구가 동물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겼어. 텐트를 열어젖혔어. 광활한 들판과 곱게 난 한 방향의 길이 보였어. 주변을 살피며 텐트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어. 하늘에선 쓸데없이 밝은 달빛이 떨어지고 있었어. 안전하게 일을 처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했어. 추워서 다시 깨니 시간은 5시 반. 다시 한번 텐트를 열어젖혔어. 드넓은 평지 위로 전부 별이었어. 아름답다 못해 충격적인 광경이었어. 타이어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 수 없을 경험이었지.


  

 그 뒤로도 타이어는 정확히 7번 더 터졌어. 동물은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웠어. 며칠을 못 씻어서 머리가 너무 간지러웠지. 나중엔 식재료를 구할 수 없어 맨밥을 먹었어. 도시로 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새벽 1시가 되어서 도착했어. 엄청 피곤하긴 했지만 이 3박 4일, 아니 3박 5일 일정은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강력한 추억 중 하나야.



 J!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어. 터지고 터지다 보면 별일 다 겪는 거지 뭐. 나중엔 결국 다 추억으로 미화될 수 있게 우리의 고을 응원하자.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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