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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운 Oct 23. 2022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B에게

2018.6.12 탄자니아 잔지바르 능귀의 한 식당에서

 안녕 B! 넌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낼 때 이 시를 항상 끝에 보낸다고 했어.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D. 수자)

  

 현재에 충실한 삶을 추구하는 너에게 딱 맞는 시라고 생각해. 그런데 바로 이 시를 잔지바르 능귀의 어느 식당에서 본거야!



 잔지바르는 희한하고 멋진 곳이었어. 능귀라는 지역은 휴양지라고 알고 갔어. 공항에서 1시간 반 가량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가는 길이 험난했어. 포장도로는 군데군데 패어있었고 비포장도로는 물웅덩이로 가득했어. 주변에 보이는 집은 전쟁 속 폐허같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어. 해변에 다와서 보니 해변가에만 조금 고급 리조트가 있었고 그 뒤로는 다 허름한 토담집 마을이었어. 마을의 어린 아이들과 주민들은 우리를 보고 밝게 인사하며 온몸으로 환영했어. 바다 쪽으로 가봤어. 비가 왔지만 바닷물은 에메랄드 색을 잃지 않고 있었어. 해변에선 조금 더 큰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덤블링을 하면서 놀고 있었어. 그들은 우리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하더니 자기들의 온갖 묘기를 공연하듯 보여줬어.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시간 종소리가 들려왔어. 여기 사람들은 90%가 이슬람교를 믿는대. 숙소에 설치된 흔들 그네에 앉아 기도 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모습을 봤어. 차분히 가라앉은 그 순간이 행복했어. 이 곳 사람들은 행복할까 생각했어.



 스톤타운이라는 잔지바르의 주요 도시에 갔어. 이 곳은 능귀보다 사람이 더 많아서 왁자지껄했어. 마침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기간이었지. 거리에는 무슬림의 흰 옷이 눈에 띄었어. 바다 근처 방파제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해가 지는 그 곳에서 어린 아이들은 바다에 냅다 뛰어들어 다이빙을 했어. 그들은 매일 그곳에 나와서 다이빙을 한대. 거리에서 비보잉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어.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뽑냈어. 드라마나 유튜브를 보고 한국어 공부를 했다고. 자신들이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어. 어떤 이들은 장난스럽게 다가와서는 우리와 사진을 찍었어.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일몰 시간을 어. 공원 한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야시장이 열렸어. 들뜬 그 순간도 행복했어. 이 곳 사람들은 행복할까 생각했어.



 B! 주변을 챙기지도 못하고 열심히 살아온 부모님을 우린 원망한 적이 있어. 그들은 빠르게 가난을 벗어나야 했고 일말의 휴식이나 게으름 따위는 용납할 수 없었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고 성과를 내야했어. 그런 속도감 속에서 자란 우리는 행복을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아. 삶은 고해(苦海)라는 인식이 강했고 행복은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라 생각했지. 그런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딱하다고 생각했어. 행복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정의는 모호하다고 지적했지.


 그런데 바로 잔지바르에서 행복하다고 느낄만한 속도를 찾은 거야. 탄자니아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pole pole'(천천히)와 'hakuna matata'(문제 없어, 걱정마)였어.  곳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놓여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해나갔어. 현재에 충실했어. 물론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행복을 판단하는 건 건방진 일이지. 일반화하거나 미화해서도 안되고. 나는 관광객에 불과하고 그들에게 어떤 고충이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언어와 행동, 태도는 나를 감화시킨 것 사실이야.



 어떤 사람은 전쟁과 결핍의 시대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어떤 사람은 노동을 신성시하는 곳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유희의 가치를 아는 곳에서 태어나. 어떤 사람은 자율적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억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할  없어. 어떠한 실패도 모두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고 어떠한 성공도 모두 노력의 결과는 아니야. 우리는 그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속도대로 현재에 충실하면 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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