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R형! 우리가 만난 이집트 다합은 언제나 그립네요. 다합은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큰 목적지 중 하나였어요. 세계에서 스쿠버다이빙 비용이 가장 저렴한 곳 중 하나이니까요. 스쿠버다이빙만 생각하고 갔다가 이제 막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을 딴 형 덕분에 프리다이빙까지 배울 수 있었죠. 바닷속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건 마치 전혀 새로운 세상이 그려진 지도를 얻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어요. 여태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탐험하는 기분이라 계속 바다만 가게 돼요.
제가 다합을 떠나기 전날, 형과 식사하다가 형이 말했죠.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동안 해외에 나와 있었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일을 구해서 적응할 수 있을지 약간 겁이 난다고요. 장기 여행자들이 참 많이 하는 고민이에요. 그런데 지금 형은 그런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 무색해질 만큼 누구보다 일상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형이 여행에서 얻게 된 좋아하는 일로 다양한 사업도 하고 있죠.
물론 여행 이후의 삶은 여행자마다 다 달라요. 여행에서 돌아오면 대체적으로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낯선 장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얻은 즐거움과 자기 효능감이 다시 일상을 살다 보면 줄어드니까요. 우리의 주변은 생각보다 바뀌지 않거든요. 먹고사는 고민을 해야 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그 간극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해요. 경험의 힘은 그만큼 강력해요.
핵심은 여행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경험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나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길 위에서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면서도 기꺼이 책임질 수 있는 활동을 추구하게 되고 그건 곧 자유로운 삶과 연결돼요. 예전의 저는 여행하는 삶이 곧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요즘의 저는 여행이 단순히 자유로운 삶을 탐색하는 하나의 작은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어딘가에 적응하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 내가 원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길 원해요. 형도 형이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계속 살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