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에
중국에 올 때 짐을 하나씩 버리고 갈 생각으로 실밥터진 수건, 거의 다 쓴 화장품 등을 가져왔다. 장기체류 비자 발급을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갈 생각이라 조금의 짐만 챙겨서 나왔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다 써버리고 귀국할 때 가벼운 캐리어로 갈 요량이었다. 버릴때의 쾌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근데 막상 귀국하려고 짐을 싸다 보니까 캐리어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중국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가 거의 비슷함을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은 것을 비운 것은 티가 안 나기 때문이다. 나의 짐은 10kg인데 내가 버린 화장품 샘플과 수건의 무게는 1kg도 안될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비운다는 것은 우리를 가볍게 함은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가벼워 졌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건 '가벼움의 크기'이다.
우리는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해야 그때부터 진짜 변화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단순히 '비웠다는 행위'에 안심하고 있었을 뿐, 가벼워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다. 변화도 더뎠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비움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버렸더라면, 좀 더 빨리 비웠더라면 비움의 과정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작아서 부담스럽지 않은 걸 비우는 건 쉽다. 그만큼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커서 중요하고 부담스러운 걸 비우는 건 어렵다.
작은 걸 소소하게 비우는 건 비운 것 같지가 않다. 비운 것 같지가 않으니까 비우는 것이 재미가 없어지고 중간에 중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큰 것을 버려보기로 했다.
운동하려고 가지고 갔던 러닝화를 냅다 버려 버렸다.
사실 러닝화는 중국에서 사용하고 버리고 올 계획으로 가지고 갔다. 오래돼서 밑창이 닳았다. 새로운 러닝화가 필요한 시점이긴 했다.
부피가 큰 러닝화를 버리고 나니 캐리어에 빈 공간이 생겼고 다른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고, 캐리어를 닫기 위해 힘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캐리어가 꽉차서 백팩에 무겁게 들고 다녔던 화장품을 캐리어에 넣을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진짜 버렸음을 인지했고 내 몸이 가벼워졌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분이 상쾌했고, 다음에는 뭘 또 버릴까를 생각했다.
수건같이 작은 걸 버렸을 때는 수십 번을 반복해야 겨우 알 수 있었는데 러닝화를 버리니 한 번에 크게 깨달았다.
중국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밀도와 속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크게 버리고 빨리 변하면서 속도를 내야겠다. 그것의 결과가 상쾌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