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최북의 눈에 내리는 비
유현숙
조선 화가 최북은 제 눈을 찔렀다 고흐는 제 귀를 잘랐다 종신형을 살던 도니 존슨은 초콜릿을 개어 그림을 그렸다
폭풍설에 묻히는 산골의 긴 밤을 아이와 함께 걷는 풍설야귀인을
잘린 귀의 자화상을
초콜릿이 풀어 낸 제 바닥의 색채를 그렸다
폭염을 걷던 어느 화가는 낯선 커피점에서 커피액을 찍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암흑이건 소리 밖이건 갇힌 감옥이건 커피점이건 누군가 고독한 손길로 붓질을 하는 곳에는 빗소리가 들린다
해수관음이 바라보는 그 바다에서 범종이 운다
종소리가 사라진 다음의 적막과 적막이 우는 공명이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단풍나무 숲길에 앉아 석류를 쪼깬다 붉게 물 든 손가락을 본다
손가락이 붉어지는 동안
최북이 찌른 한 눈을 생각하고 한 귀가 잘린 고흐를 생각하고 도니 존슨의 감옥과 초콜릿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화가가 있는 작은 도시의 비 내리는 가을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