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명의 뿌리가 되는 알파벳(alphabet)은 그리스어의 알파와 베타를 합쳐놓은 단어입니다. 이집트 문명에서부터 시작되어 히브리어, 페니키아어, 그리스어를 거쳐 라틴어가 로마를 통해 유럽으로 확산되어 갔는데요,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어에 모음을 곁들여 24개의 기본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알파벳의 뿌리는 그리스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어의 용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현대 일상 용어속에 그리스어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친 세대라면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답니다. 바로 대다수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형이 그리스어였거든요. WHO가 분류한 변이 바이러스 4종(알파, 베타, 감마, 오미크론)이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스어 알파벳은 수학이나 과학 교재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쎄타, 파이, 시그마 등 중등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온 분들에게 꽤나 익숙한 용어로 다가올 것입니다.
IT 업계에서도 알파버전 베타버전이란 용어를 흔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알파 버전이란 개발 초기 프로그램의 성능을 평가하고 오류를 보완하기 위한 비공개 개발자용 테스트 버전을 일컫습니다. 베타 버전은 시장 출시 바로 직전에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사용자들에게 공개하여 테스트하는 버전을 말하고요. 출시 순서, 그리고 오픈 대상에 따라 알파와 베타, 차례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알파 세대라는 신조어도 있습니다. X세대, Y세대, Z세대 이후의 새로운 세대를 일컫기 위해 용어를 재설정하여 다시 처음으로 되돌린 격인데요. 디지털 원주민의 시작점이자 완전히 다른 세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알파 세대는 2010년부터 2020년대 중반까지 태어나 스마트폰과 SNS가 완전히 대중화되어 실질적 문해력이 급감하는 MZ(Y세대+Z세대) 이후의 아이들에 해당합니다. 생각보다많은 일상 용어에 스며들어 있는 그리스어는 '알파'를 시작으로 '오메가'에 이르기까지 총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스어 알파벳>
알파와 오메가: 요한 계시록
성경의 구약은 유대인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대부분)로, 신약은 모두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신약이 기록된 시기는 라틴어가 공식적으로 통용되던 로마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신약이그리스어로 기록된 이유는 여전히 문학 등 문화적인 영역에서 그리스의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용어가 신약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겠지요. 실제 요한 계시록에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22:13)
그리스어의 알파벳 순서상으로 알파는 가장 처음, 오메가는 가장 마지막 자리에 있습니다. 따라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시작이요 끝, 즉 세상 창조 이전부터 세상 끝날 이후에도 존재하심을 의미합니다. 태초부터 시작한 시간의 수직선 상에서 인간은 겨우 조그마한 점 하나 정도 찍고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시작점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종료점까지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했던,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쭉 존재하실 분입니다. 시간에 매어있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며(영원자)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자 심판자가 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
흔히 하나님의 시간을 카이로스, 인간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설명합니다. 카이로스는 수직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는 수평적인 시간을 나타낸다고 하는데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가 소설 속의 한 인물에 대해 글을 쓰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예로 들었습니다.
"메리는 책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메리의 세계에서, 책을 내려놓고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두 가지 일은 시간 간격 없이 바로 붙어서 일어납니다. 이때 메리의 창조자인 작가는 첫 문장을 쓰고 난 후, 한참 지나고 나서 두 번째 문장을 쓸 수도 있습니다. 두 문장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작가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후 그다음 문장을 이어갈 수 있겠지요. 메리의 시간이 아닌, 창조자의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것입니다.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 사이에 작가의 시간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소설 속 가상의 시간에는 메리만 있을 뿐이며 작가는 별개의 시간에 속해있습니다. 인간의 시간 개념을 하나님의 시간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한 순간이 지나가야 다음 순간이 오는, 순차적으로 밟아가는 직선형의 개념입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 패러다임이지요. 반면, 하나님은 시간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직선이 아닌, 그 직선이 그려진 종이 전체를 품고 계십니다. 시간의 흐름 밖에 존재하며 영원한 현재를 살고 계신 것이지요. 따라서인간처럼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를 쪼개어 나누지 않고 모든 것을 통으로 내려다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제와내일을 모두 '지금' 바라보고 계신대요.살짝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시간의 흐름에도 매여 있지 않는 하나님의 지극히 완전한 실재를 보여줍니다.
시작과 끝을 아는 지혜: 겸손한 기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극적 반전이나 짜릿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결말에대한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끝을 안다면 어떨까요? 재미없고 밋밋한 극이 되어버릴까요? 죽음은 스포일러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삶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드라마들이 펼쳐지지요. 작은 것 하나하나에 붙들려 크게 부서지거나 좌절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를 아시고 잠잠히 바라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면 좀 달라집니다. 요동치는 격랑의 파동이 잠잠히 평균값으로 수렴되어 갑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모두를 동시 다발적으로 한꺼번에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시간 속에서 각자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돌보고 계신다는 점입니다.크로노소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카이로스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작가가 소설 속 메리의 이야기를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그에게 많은 시간을 쏟아붓듯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각별한 정성과 사랑을 개별적으로 쏟아부어 주십니다. 진정한 알파이자 오메가이신 분이 우리의 시작과 끝을 지어가신다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한 기대'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 우린 외롭지 않습니다. 함께 내 삶의 알파와 오메가를 정성스레 일구어가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지금으로 바라보시며 내 삶을 완성해 가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