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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Dec 13. 2024

할렐루야란?

찬양의 의미와 물결 효과

 누군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덩달아 입에서 계속 맴돌 때가 있습니다. 고요한 마음에 파동이 일듯, 경쾌한 멜로디는 히 있던 몸을 들썩이게도 하고 감정채도를 올려 주기도 합니다. 긍정의 에너지를 품은 말, 노래, 행동 등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점차 주변으로 확장되어 피어나 힘을 가집니다. 평온한 수면 위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가는 물결처럼 말이지요.



 한 지점에서 일렁이던 물결이 점차 주변으로 확장되어 퍼져나가는 현상을 물결 효과(Ripple Effect)라고 합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한 농업, 신업, 정보화 혁명을 설명하며 주장한 이론이라고 하지요. 작은 사건이나 행동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 혹은 잔잔하게 이는 파동의 효과와 영향력이 점차 확산되어 가는 현상을 물결 효과로 설명니다. 



 물결 효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찬양입니다. 찬양을 할 때, 렵고 힘들었던 마음이 저 멀리 떠밀려 가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힘채워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처연했던 심령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살아나고, 쫙 가라앉아있던 삶의 물결이 강력하게 솟구치기도 하며, 그 에너지 이곳저곳을 물들여 갑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지만 그저 평안해지는, 물결이 퍼지듯 긍정의 에너지가 퍼져가는, 찬양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인생의 역전 : 헨델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레엘 루야~"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위대한 작곡가 헨델의 오라토리아 <메시아> 중 '할렐루야'라는 찬양은 한 번만 들어도 가사와 음률이 뇌리 속에 박혀 끊임없이 흥얼거리게 만드는 마력을 가집니다. 연간 610만 달러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팝 가수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만큼이나 크리스마스 전후, 연말연시에 많이 듣게 되는 곡이기도 하지요.



[나무위키]에 따르면 '할렐루야'는 두 단어가 합쳐진 히브리어 합성어입니다. ‘찬양하다’라는 뜻의 동사 ‘렐(hallel)’에 명령형을 뜻하는 '-u'가 붙어서 ‘할렐루(hallelu)’, 즉 '찬양하라'는 의미를 만듭니다. 여기에 하나님이란 뜻의 ‘야훼(Yahweh)’를 축약한 ‘야(yah)’를 치면 ‘야훼(하나님)를 찬양하라로 번역될 수 있겠지요. 일반적으로 '할렐루야'와 혼용되어 사용되는 '알렐루야'는 신약을 기록했던 그리스어의 h가 약화발음이라고 합니다. '할렐루야', 혹은 '알렐루야'는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명령의 의미를 가집니다.



 영국의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의 장엄함에 놀라 벌떡 일어나게 된 이후로 이 곡이 연주될 때 모두가 기립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작곡가로서 바닥지 떨어졌던 헨델은 <메시아>를 선보인 후,  절망과 궁핍, 건강 문제 등에서 단번에 벗어나 명예를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 찬양하기 위해 썼던 곡이 수렁에 빠져있던 그의 삶구제해 주는 역전의 드라마를 쓰게 해 준 것이지요. 식음을 전폐하고 24일 만에 곡을 써 내려간 헨델의 심령을 깊이 울렸던 말씀은 이사야서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6)




  초라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메시아를 만나 눈물로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초연되었던 날(4월 13일), 그는 직접 자신의 곡을 지휘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로부터 17년 후, 평소의 소원대로 성금요일, 곡의 초연 날짜와 동일한 4월 13일 을 마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곡 '할렐루야'가 해마다 공연되는 인생의 역전, 그 벅경험 속에 얼마나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까?



  인간은 왜 하나님을 찬양할까요? 인간은 왜 창조되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1)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더라도 부족함 없이 스스로 만족하고 존재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쁘고 즐겁게 창조 작업을 하신 것이지요. 창조주의 성정이 우리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우리 인간 역시 무언가 만드는 일을 기고 또 몰두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안무를 하는 등의 예술 작업모두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 전에, 자기를 표현하고 나타내는, 바로 신을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투여한 결과물이 눈앞에 놓이면 진한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빚어낸 작품에는 자신의 땀과 정성, 그리고 혼이 서려 있기에 무한 감동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창작물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기쁨을 준다해야 할까요.



 아이를 낳고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옆으로 누워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 보면 사랑과 기쁨 마음에 꽉 차오릅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아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저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느끼는 행복이지요. 가만히 있어도 좋 사랑스러운 그 아이가 뜬금없이, 문맥 없이, 툭 하며 어떤 말을  때마다 마음이 녹아는 경험을 합니다.  마법의 문장 바로  '엄마 사랑해요!'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건네는 사랑 고백 안에는 감사, 존경, 만족, 기대, 믿음, 행복 등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실린 다양한 의미를 알기에 부모로서 더 잘해주고 싶은 벅차오름과 다짐이 따라오게 됩니다.

 



사랑 고백




 하나님 대한 찬양 이런 것 아닐까 싶어요. 형식을 갖춘 성대한 연주곡처럼 거창 필요 없이 그저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 말이지요. 창조주와 피조물은 서로에게 엇을 해주어야 하는 계약 관계가 아닙니다. 부모자녀를 바라보 촉촉한 사랑의 마음 전달되고, 아이가 이를 느끼며 사랑을 고백하 되, 조건  교감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물론, 일방향일 수도, 쌍방향일 수도 있지만 후자일 경우 마땅히 허락된 찐한 관계의 비밀을 맛볼 수 있게 되겠지요.   



  창조된 순간 이미 랑 고백을 받은 우리는, 아이와 같이 부모가 준 사랑을  되받이하여 표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하염없짝사랑은 받는 사람도 부담스고 주는 사람도 외롭습니다. <사랑은 표현지 않으면>이라는 시에서 노래합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환상이고, 만남 없는 그리움은 외로움이며 표현되지 않는 감정은 슬픔이라고요. 받은 사랑을 예쁘게 되돌려 표현하면,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될지 누가 아나요? 이미 잘 차려진 사랑의 밥상을 맛있게 받으며 감사 찬양고백을 한다면 더 많은 애정마음의 복락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관계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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