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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물갈이

여지없는 불청객

by 위혜정

물갈이도 나이를 감별하나 보다. 20~30대에는 전혀 몰랐는데 지금은, 동남아의 문이 열릴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불청객이 돼버렸다. 베트남의 물이 석회수라서 탈 날 수 있다는 사실은 20여 년 전부터 귀 따갑게 들어왔다. 샤워 필터를 챙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라면을 먹을 때 수돗물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원래 음료를 썩 좋아하지 않아 물도 건강 상 부러 마셨는데. 생수만 사서 마신 정성이 김 빠지게 또 물갈이라는 깔때기를 통과해 버렸다. 으흑.




베트남 도착 셋째 날 밤, 속이 울렁거려 잠에서 깼다. 꿈결에서의 구토감이 너무 생생하다고 느꼈는데 현실로 재현될 줄이야. 변기통을 붙들고 게워내는 새벽, '뭘 잘못 먹었나?' 저녁 메뉴부터 체크한다. 남편의 첫 번째 분석 레이더망에 걸려든 녀석은 볶은 땅콩.


"나도 속이 좀 안 좋아. 땅콩 볶은 기름이 이상했나 봐.

아들만 멀쩡하고 당신하고 나만 그래. 우리 둘만 먹은 건 땅콩이잖아."


꽤나 설득력 있다. 여행 전 처방받아온 약을 뒤적거리며 적당한 물약을 찾아 삼켰다. 밤새 속이 쓰렸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두통 때문에 침대와 하나가 되어 버렸다. 남편은 멀쩡한데 나만. 땅콩이 아니었나? 낮잠도 잘 안 자는데, 여행지까지 와서 수면으로 비싼 시간을 탕진하다니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몸이 안 따라주니 다 필요 없다. 역시 건강이 깡패다.




"엄마, 위 씨가 위가 아프면 어떻게 해요!"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평생 속 쓰림이나 소화불량 한번 걸리지 않는 강철 위를 자랑해 왔는데, 웃프다. 쩝. 다음 날부터는 장에서 줄곧 물을 쏟아낸다. 많이 먹거나, 길거리 음식이나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거나, 잘못 먹은 적이 없는데 두통, 복통, 설사 증상이 꼭 발리 밸리다. 발리에선 발리 밸리라고 하니, 베트남에선 베트남 밸리라고 해야 하나. 남편은 평소보다 물에 씻은 생야채 섭취가 급격하게 늘어난 나의 식단을 예리하게 분석해 낸다. 엄한 땅콩이 문제가 아니었다. 약해진 몸뚱이가 격하게 반응한 물갈이였다.




조심한다 쳐도 예민한 사람에게 노출되는 물의 위협은 넘쳐난다. 양칫물, 수영장물, 야채에 남은 물기, 해산물, 접시나 그릇이 건조되고 남은 얼룩(석회 성분) . 이제 양칫물도 생수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몸이 감당해 낼 저항력이 낮아진 것이니 몸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그래도 보통 3~4일을 앓는다는 물갈이와 이틀 만에 헤어졌다. 장염이 아닌 게 어딘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회복 탄력성에 감사하다. 난, 이제 물갈이하는 여자다. 동남아 여행지에서는 조심 또 조심 관리 대상녀 등극.



발리 밸리에 이어 베트남 밸리를 겪고 나니 잊지 말고 챙겨야 할 물조심 항목들을 다시 점검해 본다.


첫째, 수영 후 입헹구기다. 동남아 휴양지에서는 리조트 내에서 수영장 이용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이 점을 간과했다. 남편과 아들은 물 찬 제비처럼 물에서 자유자재로 수영을 하는 수준급 실력자들이다. 이번 기회에 둘에게서 수영을 배워보겠다고 매일같이 물에서 시간을 보냈다. 알게 모르게 먹은 물, 제대로 탈이 난 이유다.




둘째, 예민하다면 양칫물도 생수를 사용하자. 발리에서 사용했던 샤워 필터가 베트남에서 훨씬 빨리 수명을 다한다. 발리에서 3주가 되어서야 갈색빛으로 변색되었던 필터를 베트남은 1주가 멀다 하고 갈았다. 싱크 물도 얼마나 미끄덩거리는지, 비누기가 남아있는 줄 알고 아무리 헹궈내도 여전히 미끄럽다. 화학적으로 어떤 성분의 어떤 영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다르다는 것.




셋째, 상비약과 유산균을 챙기자. 물갈이가 새벽에 시동이 걸릴 경우, 바로 조치할 수 있는 약이 없다면 불안감이 더해진다. 아픈 몸을 이끌고 현지에서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당혹스러움 대신, 가능하다면 미리 갖추는 것이 지혜다. 한국에서 미리 처방받은 약을 챙기고 물갈이 예방약(유산균 정장제)까지 준비하면 금상첨화다. 개인적으로 탈이 난 후, 약복용과 함께 유산균을 잘 챙겨 먹은 것이 빠른 회복의 비결이었던 것 같다.




베트남 물갈기, 예방이 베스트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빠른 조치로 여행 건강을 바로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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