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맛있는 먹거리 정리
날씨가 따뜻하고
값싸게 야채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동남에 살기로 했어요.
20대, 태국 푸켓 여행을 하며 만난 한국인 관광 가이드의 말이다. 그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을 떠나 동남아를 평생 거주지로 택한 이유가 고작 이거라고? 지금은 백분 이해한다. '날씨'와 '먹거리'는 삶의 질에 또렷한 윤곽을 그어주는 핵심요소임이기에. 난치성 폐질환으로 콜록 일 때마다 남편이 동남아 거주 옵션을 거론하면, 사실 혹하기도 한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건강한 삶'은 이해가 아닌, 당위이다. 그걸 일찌감치 깨닫고 행동으로 옮긴 관광 가이드의 실천력이 따뜻한 지역에만 오면 떠오른다.
동남아 국가들은 천혜의 자연을 수혜 받았다. 연중 따사로운 기후로 자연과 야생이 생장하고, 아직 개발되지 않았을 뿐, 품고 있는 잠재력이 화수분과 같다. 관광 산업이 1위가 아닐까는 우리만의 착각이다. 땅과 바다의 산출물들만 갖다 팔아도 이 나라들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 자연을 누리기 위해 굳이 들어오겠다는 외국인을 거부하지 않고 수익 창출로 연결시키는 것이 관광업이고, 주요 산업 뒤에 따라오는 관광산업은 덤처럼 얹어진 부산물이라고나 할까.
우선, 그 많고 많은 자원들 중 식음료에 해당하는 베트남의 먹거리를 살펴보자. 관광지의 비싼 바가지요금들을 피해 갈 수 없지만, 그나마 저렴하게 마음껏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아들은 본래 한국에서부터 코코넛 워터를 보면 사족을 못썼다. 솔직히 난, 이 밍밍한 맛이 왜 좋은 걸까?라는 의문을 품고 지갑만 열어주었다. 베트남에서 아들은 거의 매일 같이 코코넛을 달고 살았다. 길거리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음식점에 가도 판매되는 코코넛의 가격은 25,000동(약 1,500원)에서부터 90,000동(약 5,000원)까지 부르는 게 값이다. 다행히 호텔 앞의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코코넛은 단돈 1,500원의 행복을 매일 배달해 주었다. 자연산 건강 스포츠 음료로 전해질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음료이자 소화촉진, 노화방지, 혈압감소 등 코코넛의 효능은 끝이 없다. 코코넛의 참맛을 알고 난 후, 운동이 끝날 따마다 설탕 없는 자연산 에너지 드링크로 아들과 함께 즐겼다.
그 외에 열대 과일을 내세운 음료들이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아보카도/바나나/망고 스무디, 사탕수수+패션푸르트 주스, 구아바 주스, 용과 주스 등이다. 생과일을 즉석에서 갈아주는데 단맛이 싫으면 설탕이나 연유를 빼달라고 취향에 맞게 주문하면 된다. 길가에서는 25,000동~30,000동 정도이고 한화로 2,000원 이하의 음료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열대 과일은 생산국에서 직접 먹는 것이 제맛이다. 동남아에 올 때마다 망고를 매번 사다 먹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고, 새롭게 맛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된 과일이 두 가지 있으니 바로 용과(drafon fruit)와 패션 푸르트(passion fruit)다. 솔직히 한국에서 '두 과일을 왜 돈 주고 사 먹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무시무시한 용모에 아무 맛까지 안나는 용과, 너무 새큼해서 눈시울을 찌푸리게 하는 패션 푸르트 모두 그다지 매력적인 과일이 아니었다. 베트남에 온 후, 두 과일을 재발견했다. 용과의 경우, 한국에서 접하는 종은 대개 흰 과육이지만 이번에 맛본 종은 적색이다. 좀 더 당도가 높고 요구르트와 함께 곁들이니 핑크빛으로 물드는 색감과 톡톡 터지는 식감이 제법 그럴싸하다.
패션 푸르트는, 학교 급식에서 얼린 과일로 종종 맛보았다. 누런 콧물처럼 끈적한 데다 시큼한 맛에 섣불리 식판에 담지 않았다. 이번에 베트남에 와서도 망고스틴인 줄 착각하고 잔뜩 사더니 웬걸, 처음부터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겉껍질이 매끈함에서 쭈글이가 되는 과정에서 과일이 익어가니 생각지 못했던 단맛이 돈다. 반으로 쪼개어 가장자리를 살살 긁어내듯이 달래며 들어내면 덩어리째 통째로 과육을 입에 털어 넣을 수 있다. 가판대에서 사탕수수와 더해진 패션 푸르츠 주스는 기대 이상의 맛으로 또다시 찾게 된다.
이외에도 미니 과일을 맛보는 걸 잊지 말자. 사과와 바나나, 보는 것만으로도 귀엽다. 특히 엄지 손가락만큼 짤닥만한 몽키 바나나는 얇은 껍질에 벗겨내면 입에 감기는 당도가 정말 진하다. 유럽인들은 바나나의 단맛에 짠맛을 섞어 감칠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소금에 찍어 먹는다. 따라서 해봤는데 뭐, 그냥 먹는 게 개인적인 취향이었다.
발리에서 처음 맛보았던 포멜로를 베트남에서도 반갑게 만났다. 감귤과에서 가장 큰 과일에 속하는 이 과일은 외피가 두꺼운 솜처럼 포근하게 알맹이를 감싸고 있다. 과육 크기가 워낙에 크다 보니 알갱이가 톡톡 씹히는 맛이 있어서 아들이 좋아하는 열대 과일이다. 알맹이를 두르고 있는 얇은 껍질을 벗겨내니 꼭 꽃게를 발라낸 것처럼 조각조각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어본 과일은 잭푸르트(Jackfruit)다. 두리안과 비슷하지만 향이 약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일 특유의 상큼 달콤함은 없지만 씹을수록 독특한 고소함이 있어서 칩의 형태로 많이 먹게 되는 과일이다. 말린 과일 칩으로 다른 과일과 함께 섞여있을 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맛이다. 나중에 잭푸르트 칩만 따로 구매해 와서 한국에 들어와 선물도 주고 먹기도 했다.
베트남 감자는 무얼 먹고 자랄까? 하고 궁금해질 만큼 크고, 길고, 포슬포슬하다. 이런 감자로 튀겨낸 감자튀김의 맛은 더 말하여 뭐 하랴. 어딜 가든 주문하여 대령되는 감자튀김은 만족도 백점이다. 얼마나 긴지 아들의 얼굴 길이 만큼까지다. 모든 감자튀김이 통통하고 두꺼우며 맛까지 좋다. 꼭! 베트남 감자튀김을 경험해 보자.
길거리에서 싸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반미를 빼놓을 수 없다. 반미란, 베트남식 샌드위치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기도 하다. 바게트 빵 안에 주재료(치킨, 소고기, 돼지고기, 참치 등)와 야채를 곁들인 형태이다. 주재료의 종류를 선택한 후 계란과 치즈 등을 추가로 넣어 취향에 맞는 반미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250,000동~300,000동 (1,500원~2,000 정도)으로 주스 한 잔 가격과 비슷한, 꽤나 가벼운 액수다.
가판대에서 샐러드도 판매를 하는데 함께 주문하여 먹으면 가벼운 한 끼 식사가 된다. 단, 샐러드의 경우 준비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이유는 POD(Production On Demand:주문형 제작)라고 해야 할까. 즉, 비프 샐러드를 주문하면 즉석에서 소고기를 볶고 야채를 썰기 시작한다. 배고픔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베트남 반미가 맛있는 이유는 바게트 빵이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식 바게트처럼 딱딱하지 않고 겉은 바삭하지만 안은 부드러우며 미니 바게트에서부터 대형 바게트까지 사이즈도 다양하다. 아들이 호텔 조식에서 후식으로 매일 미니 바게트를 구워 먹을 정도로 촉촉한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특장점이다.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것이 쌀국수다. 쌀국수는 대표적으로 pho bo(소고기 육수 쌀국수), pho ga(닭고기 육수 쌀국수) 두 가지가 있다. 일단, 기본 재료의 쌀국수(국수, 육수, 고기)가 나오면 야채/허브와 소스는 개인의 취향대로 추가해서 넣어 먹으면 된다. 고수를 처음 경험했던 20대에는 '이걸 어떻게 먹어?'하고 강하고 독특한 향을 참기 힘들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허브의 천국 동남아에서 고수를 한껏 얹은 쌀국수는 꼭 맛보아야 할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