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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Jan 30. 2019

다시, 시.작.

2003년 12월, 시를 써서 등단했습니다. 예술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고 살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예술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 첫발이었다고 기억해요. 


2004년에 만들어진 첫 시집 ‘밥집 여자의 시’ 아직도 아픕니다. 도려내지고 버려졌던 마음들, 글자들. 하도 상처가 커서 글쓰기를 그만 둬야겠다, 생각이 들만큼 아팠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것 말고는 할 것이 없는 사람처럼 계속 쓰고 또 쓰고, 그러다보니 제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없던 힘도 솟아나고.  


2006년에 만들어진 두 번째 시집 ‘그리운 이름은 눈물로 써도 소금기가 없다’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죠. 지까짓게, 라는 비아냥에 그럼 너도 해보든가, 로 응수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글쟁이로써의 자존심이 담긴 책입니다. ^^


호수공원 앞 ‘윈디’는 내 공간의 힘을 알게 해준 곳입니다. 바람 잘날 없는 이름 덕에 바람 잘날 없다 접었지만 언제나 생각만으로 빙긋이 웃게 해주는, 최초의 아지트, 최초의 동굴.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노래를 잘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었는데 노래를 꽤, 하더라구요, 제가.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는 마음으로 공연도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덩이에 물뽐뿌(?)를 하지 않고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을 저질렀죠. 아마추어가 가수를 게스트로 부르는 유료공연을, 게스트로 출연한 가수들이 황당해 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몰랐답니다. 거기에 응해 와줬던 관객들이 그저 소중할 뿐입니다. 


사진은.... 여러 번에 걸쳐 존재했던 인생의 전환점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술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으니까요. 


사진이 밥벌이로 정착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경기국제보트쇼’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합니다. ^^


눈치채셨나요? 맞아요, 위 사진이 바로 저 자신을 캐릭터화한 ‘마녀’의 원형입니다. 마녀는 정체된 시간을 살고 있는 피터팬들의 늙은 노처녀버전이랍니다. 콘텐츠진흥원의 캐릭터지원사업으로 탄생했어요. 솔직, 담백, 자뻑을 무기로 장착하고 돌진하는 캐릭터. 잘 하는 일이 밥벌이가 된 두 번째 케이스입니다.


제주를 이야기하려고 사진을 고르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어서 선뜻 정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떠올랐지요. 유.레.카!! ‘절울’이라는 작품입니다. 공천포에 위치한 #바람섬갤러리 관장님이기도 하신 강길순 작가님의 조형작품이에요. 깊은 바다에서 밀려와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흐름을 삶의 원형인 해녀의 몸에 옮겨 붙은 따개비로 형상화한 것이 마치 제주에서의 제 삶을 보여주는 듯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잠깐, 저만 그런 건 아니었고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답니다. 전시도 끝났으니 전시 때 찍은 사진들로 곧 감동을 재탕하려고 해요. 저에게 있어 제주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충분하다 싶습니다. 


이제와 솔직히 고백하건데 예술을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들 중 가장 어색하다 싶은 일은 가족들과의 괴리감이었어요. 일상을 벗어나면서 일상의 중심에 있던 가족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놀랍기도 편리하기도 했던 이 변화는 결국 가족과의 단절을 만들어냈습니다. 15년 가까이 가족들이 제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에 대해 지극히 표면적이고 단순한 정보만을 접하고 저 또한 가족들의 일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죠. 그래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용문에서의 제 시간들은 가족과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예술 활동을 하는 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들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만족을 줍니다. 이곳에서 저는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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