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10, 250924
발리에서 아이가 잠드는 시간은 저녁 8시 반 전후다. 일어나는 시간은 아침 7시쯤. 일주일 정도 10시간 이상 푹 자고 있다. 매일 아침 어린이집 늦는다며 억지로 깨우던 날들과 다르다. 오히려 조금 더 자줬으면 싶기도 하다. 여유 있는 날들이다.
새로운 데이 클래스를 찾아갔다. 미술학원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만들기 수업을 예약했다. 말없이 선생님과 색칠을 시작했다. 얼굴 표정 변화 없이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만들기에 집중했다. 선생님은 아들이 설명을 못 알아들으면 사진을 보여줬다.
집중의 한 시간 반, 비비큐 모형이 만들어졌다. 결과물을 보여줄 때 살짝 웃어 보였다. 여기도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오후 일과 문제가 해결됐다. 체육과 미술을 번갈아 다니면 되겠다는 결론이다.
다른 문제가 생겼다. 만들기 결과물을 한국 집에 가져가겠다는 거다. 수트케이스에 과연 자리가 남을 것인가. 챙긴다 해도 부서질 가능성도 있다. 미술수업을 한두 번 더 하기로 했으니 큰 부피의 짐이 더 늘 것이다. 자신이 만든 비비큐로 요리하는 놀이를 한참 즐겼다. 한국에 가져가서도 가지고 놀 기세다. 짐 부치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모양이다. 짐정리 걱정거리가 늘었다.
아내가 영상통화로 보면 아들 살 빠져 보인다고 걱정했다. 든든히 먹고 배를 한 번 두드릴 때가 됐다 싶었다. 비비큐 모형 만들기를 보다 보니 진짜 비비큐가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저녁식사 장소를 일본식 고깃집으로 정했다. "한국에서 먹던 맛이야." 익숙한 고기맛에 숟가락과 포크가 전보다 바쁘게 움직인다. 밥과 사이드 음식도 잘 챙겨 먹었다. 발리에 온 이후 식사량이 가장 많은 저녁이다. 애가 잘 먹으면 부모도 배부르다. 인도네시아 음식도 잘 먹지만 익숙한 음식도 자주 먹여야겠다.
바로 호텔로 가기 싫었다. 아들과 해변길을 산책하기로 했다. 마침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누르는 발리섬의 동쪽이다. 노을이 멋들어지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운치 있는 붉은빛 해안이 우리를 계속 걷게 만들었다. 호기심 대장은 또 작은 발견들을 이어갔다. 모래 사이 작은 식물의 이름이 궁금했고, 오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뜻을 알고 싶어 했다. 걷는 속도는 자꾸 늦어졌지만 재미는 더해졌다.
문득 행복하다는 감정이 올라왔다. 아들과 손잡고 여유 있게 해변을 걷는 순간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작은 순간에서 행복을 찾으라'라고 하는 말이 맞나 보다.
호텔로 돌아왔다. 혼자만의 감동에 젖어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씻기고 잠들면 완벽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옷도 안 벗고 침대 위에서 계속 방방 뛰었다. 빨리 씻자고 옷 벗으라고 또 잔소리를 해댔다. 지금 말고 나중에 씻겠다고 실랑이하는 이 순간도 행복인 건가. 어쩌면 이마저도 먼 훗날 그리워할 행복의 한 조각이 될지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