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깨끗한 접시와 아빠의 복잡한 머릿속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11, 250925

by 이음바다

### 연재 등록 실수로 9월 25일 글이 먼저 올라가 버렸습니다.

10화 <발리에서 찾은 작은 순간의 행복> (9월 24일 글) 을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가지 개인 교습, 어린이집은 포기했지만


아들은 발리에서 두 가지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영어와 수영이다. 영어는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은 두 번 수업을 가진다. 어린이집 보내기를 포기하게 돼 아쉬움이 크다. 그나마 두 가지 튜터링은 잘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일대일 수업을 받는다 해도 영어 실력이 확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영어에 조금 더 흥미를 붙이고 자신감을 가지길 바랄 뿐이다.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수업 초반에는 놀이 위주의 수업을 했다. 선생님과 금방 친해지고 수업 시간에 재미를 붙였다. 그런데 재미만 붙은 게 문제였다. 게임 자체에만 집중하고 영어는 쓰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이 묻는 말에 계속 우리말로 답했다고 한다.


야채가게 사장님도 했다가 은행원도 했다가

영어로도 말놀이가 되는구나


수업 방식을 말하기 위주로 확 바꿨더니 효과가 났다. 물론 게임 형식이다. 영어로도 말놀이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칠 시간보다 조금 일찍 수업 장소 주변으로 가보면 영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를 본 채 만 채하며 선생님과 계속 영어 말하기 게임을 하려 한다. 아이가 바로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고, 장난기 많은 아이를 잘 챙겨주는 선생님 덕분이기도 하다. 아들도 영어 수업 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킥은 벌어지고 발은 모이지 않아도


아들이 영어 수업보다 더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수영 수업이다. 수영은 정말 그저 노는 것에 가깝다. 킥이 자꾸 벌어지고, 발이 모이지 않는다. 배영 자세는 햇살이 눈부시다며 자꾸 얼굴을 가려 연습이 안 된다.


몸으로 하는 것 역시 빠르게 실력이 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며 한 시간 진 빠지게 놀 듯 배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래도 발리를 떠나기 전 예쁜 발차기 자세를 만들었으면 하는 욕심은 숨길 수 없다. 수영 수업은 원래 계약보다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KakaoTalk_20250925_222324617_10.jpg 태양을 피하는 방법

싫다던 반복에 길들다


반복의 하루였다. 일정이 모두 지난 10일 사이 한 번 해봤거나 가본 곳이다. 전날 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틀 전 땀띠를 얻었던 체육관에서 체육 수업에 다시 참여했다. 어제 갔던 비비큐 식당을 또 찾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같은 것의 반복을 싫어했다. 가능하면 늘 다른 곳을 찾았다. 안 해보던 것을 하려 했다. 2세라는 존재는 내 삶의 패턴을 바꿨다. 아이가 편한 것이 우선이 됐다. 아이가 좋은 것이 내가 좋은 것이 됐다. 왜 반복에 익숙해졌을까. 더 이상 내가 다른 것을 찾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KakaoTalk_20250925_222324617_08.jpg 아마도 인생 첫 물구나무서기
KakaoTalk_20250925_222324617_02.jpg 신나는 체육수업을 마치

아이콘발리 안의 비비큐 식당에 입장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는 건데 아이를 핑계로 삼는 것은 아닐까. 일과 육아에 쫓기다 보니 새로운 경험의 기회와 여유가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새로움의 공간은 늘 열려 있을 텐데. 내가 거기에 발 붙이길 어느 순간부터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깨끗한 접시와 복잡한 머릿속


비비큐 식당에는 90분 무한 리필이 있었다. 우리 돈 2만 5천 원 정도로 시간을 꽉 채워 고기를 실컷 먹었다. 키가 아직 120cm가 안 되는 아들은 공짜였다. 전날은 몰랐다. 오늘은 작정하고 불판을 세 번 갈며 고기를 구웠다.


오랜만의 과한 기름칠에 배탈 나는 것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포크로 열심히 고기를 찍어 먹는 아들을 쳐다보다 또 생각에 잠겼다. 아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길 어려워하는 게 익숙한 것만 보여주던 부모의 영향은 아닐까.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뭐부터 해야 하나. 더 고민하면 체할 것 같아서 답 없는 생각뭉치는 여기까지 풀고 일단 접었다. 깨끗해진 아들의 접시처럼 내 마음도 좀 가볍게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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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25_222324617_05.jpg 식사를 끝내니 딱 공연 시간. 내 팔을 감싸 안고 15분을 다 감상한 뒤 호텔로 갔다

드디어 모자상봉의 날, 길고 길 하루


정말 긴 하루가 될 내일을 대비해서라도 몸과 마음을 비워야 했다. 드디어 모자상봉의 날이다. 아내는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에 밤 12시쯤 내릴 것이다.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바투르산 일출 지프투어를 떠날 예정이다. 새벽에 해를 보고 오전 11시쯤 호텔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내일 아침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아이를 거의 못 재운 채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발리 한 달 살기가 반환점에 온 기분이다. 이음아, 긴 하루 잘 견디며 잘 놀아보자.


KakaoTalk_20250925_222324617_11.jpg 솜이불을 덮은 듯했 9월 26일 발리 사누르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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