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 것들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8, 250922

by 이음바다

입력된 새로운 일상


짧지만 새로운 일상에 아들은 금방 적응했다. 준비된 주중 오전 일정으로 월목 수영, 화수금 영어 수업이다. 여러 번 얘기해서인지 아이의 머릿속에 입력됐나 보다. 함께 잠에서 깨 시리얼로 아침을 챙겨 먹었다. 색종이 미니카를 접다가 올림푸스의 별을 몇 편 챙겨봤다.


수영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이번에는 수업 중 쉬는 시간을 잘 지켰다. 나도 중간중간 먹을 간식을 미리 준비해 뒀다. 물도 자주 마시며 수영 수업 한 시간을 꽉 채웠다.


준비 운동 철저히. 헛둘헛둘.

마지막 남는 아이


바로 이어지는 어린이집 등원시간. 이번에는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뜨거운 햇살 속에 선글라스를 끼고 이미 익숙한 등원길을 걸어 도착했다. 표정이 앞서 두 번의 등원 때처럼 다시 굳는다. 그러나 안 가고 싶다는 말은 없었다. 지난번보다 데이케어 시간을 한 시간 줄여 세 시 전에 하원하기로 했다. 선생님께 친구들과 어울려 놀도록 지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채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까지 보고 얼른 돌아 나왔다. 이게 맞나 싶었다. 지난번보다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지내길 바라며 세 시간을 기다렸다.


아이는 마지막 하원자였다. 밥도 잘 먹고 2시까지 있는 프로그램도 잘했다고 한다. 2시가 되면 다른 아이들 대부분이 하원한단다. 이후 혼자 또는 두세 명만 남는 상황이 싫은 듯했다. 다시 돌아온 아이스크림 타임. "어린이집은 재밌는데 아빠가 제일 늦게 오는 게 싫으냐?"라고 물었다. 맞다고 한다. 하원 시간을 한 시간 더 당기기로 했다. 이제 어린이집은 12시부터 2시까지 만이다. 그렇다고 2시부터 잠들 때까지 독박육아를 할 수는 없다. 2시 이후에 할 다른 프로그램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등원 직전 표정과
하원 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표정의 차이

놀이터가 있는 식당


단골도 좋지만 새로운 식당을 가고 싶었다.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키즈 프로그램이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가격이 비싼 곳이다. 더 이상 가성비를 찾지 않게 됐다. 아이와 내가 편하고 만족하는 게 우선이다. 해변길을 포함해 10분 정도 산책하듯 걸어 놀이터 식당에 도착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런 식당이 어디 있냐"던 아들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놀이터로 뛰어갔다.


놀이터로 바로 뛰어갔다
자신 있어하는 그물 오르기
잘 안 하던 매달리기도 해본다

얼굴을 빤히 봐도


음식을 주문해 놓고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먼저 놀고 있던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아들을 향해 '피융피융' 소리를 내며 총 쏘는 시늉을 했다. 같이 놀자는 신호다. 하지만 아들은 애써 외면했다. "같이 놀면 재밌겠네"하며 부추겨 보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 총소리를 낸 아이들은 몇 번을 더 아들 곁에 가서 장난을 쳤다.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토요일 사파리에서도 그랬다. 입구에서 한 여자아이가 자꾸 아들 곁을 서성거렸다. 마성의 남자 정이음의 매력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바로 앞에서 얼굴을 빤히 보고 옷을 잡고 흔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옆에서 열심히 바람을 넣었지만 딴 곳만 바라봤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끌려온 아이, 마주선 저 어색한 녀석이 내 아들이라니


변화의 특이점을 기다리며


타고난 성격인 걸까. 아들은 다른 이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마음을 쉽게 여는 법이 없다. 아내와 나는 아들이 더 활달하고 개방적인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번 발리 한 달 살기의 큰 목적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서 처음 겪는 상황을 많이 마주하며 조금 달라질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변화의 특이점이 오길 바랄 뿐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저 불편의 연속, 힘듦의 이어짐일 수 있다. 오히려 부모에게 더 의존하는 부작용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그래도 괜찮다. 아이만의 속도가 있을 거다. 관찰하고 기다리는 것도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재밌고 분위기 좋은 놀이터 식당에 또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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