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누르 해변의 ‘쿵’ 소리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7, 250921

by 이음바다

아들의 선언, 아빠의 쾌재


"발리에서 할 수 있는 거 다 해볼 거야."

토요일밤 잠들기 전 아들이 갑자기 의지를 불태운다. 타지 생활이 힘들지 않고 호기심이 계속 넘치나 보다. “그래. 해보자.” 맞장구를 쳤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네가 한 말이니까 책임져야 한다. 아빠는 준비돼 있단다. 힘들어도 다 끌고 다닐 거다. 무르기 없다. 자초하신 일입니다.


아이콘발리 앞 택시 대기 장소에서
다른 관광객에게 부탁해서 함께 한 장

첫 바다 수영


일요일 아침은 첫 바다수영 시간이었다. 해변에 발만 담그던 아들과 이번에는 깊게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걸어서 5분이면 닿는 사누르 해변에 도착했다. 잔잔하던 바다가 오늘따라 파도가 작지 않다. 아이는 개의치 않고 물에 뛰어들었다. 바로 파도를 한 방 맞고 넘어졌다.


겁을 먹었는지 그 뒤로 계속 내 손을 잡고만 바다에 들어갔다. 구명조끼를 입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물 위에 떠 있는 동안 계속 재잘거렸다. 처음엔 시련이었던 파도는 금세 즐길 거리가 됐다. 파도를 넘는 재미를 조금씩 더 알아갔다. 멀리서 큰 파도가 오는 게 보이면 살짝 긴장한 표정을 보였다. 잠시 뒤 몸이 함께 출렁일 때면 어느 때보다 크게 웃었다.


처음엔 안겨 있었고, 얼마 뒤 두 손만 잡았다. 한 손만 잡기 시작한 뒤 혼자 떠 있기까지 연습했다. "10초만 손 놓고 있어 보자." 하나부터 열까지 셀 때 동안 혼자 잘 떠 있었다. 이렇게 또 다른 성취가 쌓였다. 다음에는 스노클링 마스크도 써보고 핀도 신어 보기로 했다.


바다 수영은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홀린 듯 앉은 디저트 가게


원래 오후에 바다를 다시 가려 했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샤워까지 마치니 마음이 달라졌다. 또 몸을 적시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시원한 카페에서 단 것을 먹기로 합의했다.


숙소 코 앞 아이콘발리가 제일 만만하다. 중국식 디저트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매장 앞에 전시된 아이스크림 모형에 아들은 홀린 듯 자리에 앉았다.


해변을 바라보다 사누르에서는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아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제안했다. 뭐든지 해보겠다던 아들이 싫다며 잡아뗀다. "자전거를 네가 타는 게 아니고 아빠가 태워줄 거야. 너는 앉아만 있으면 돼." 표정이 바뀌었다. 자전거 산책이 결정됐다.


2천원의 행복


자전거 렌털샵을 쉽게 찾았다.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의자가 달린 자전거로 골랐다. 한 시간에 25K 루피아. 우리 돈으로 2천원 정도다. 아이를 앉히고 사누르 해변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후 네 시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왔다. 며칠 찌푸리던 하늘도 맑았다. 좁지만 잘 닦인 길로 신나게 달렸다. 해변을 낀 경치가 우리를 더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작은 둔턱을 넘을 때마다 "쿵! 쾅!" 하며 호흡을 맞췄다. 강아지가 보일 때, 커브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20분 정도 달렸을 때 사진 찍기 딱 좋은 뷰가 보였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나 혼자 내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출발!
이때까지는 좋았는데...

그날의 ‘쿵’ 소리


"쿵."

둔탁한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자전거와 아이가 넘어져 있었다. 모래에 얼굴이 파묻힌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뛰어갔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함께 일으켜줬다. 발리 아저씨 한 분이 생수병을 들고 달려왔다. 얼굴의 모래를 씻어주셨다. 아이는 진정되어갔다.


몸은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모래 위로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천만다행이다. 자전거를 그만 탄다고 할 줄 알았다. 조심스럽게 다시 타자고 물어봤더니 타겠다고 한다. 재밌긴 재밌나 보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지 귀찮도록 물었다.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말이 없는 걸 보면 정말 괜찮은가 보다.


다시는 혼자 두고 멀리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용감한 아이다. 한 시간을 꼬박 채우고 자전거를 반납했다. 다음에 또 탈까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 또 타자고 답한다. 이번에 간 곳보다 더 멀리 가보자고 목표도 제시했다.


미운 아빠를 공격!

철없는 아빠의 반성


엄마와 한 시간의 긴 통화로 일요일을 마무리했다. 아빠 때문에 자전거에서 넘어졌다고 엄마에게 이를 줄 알았다. 혼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들은 말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니라 여긴 것일까. 떠올리고 싶지 않아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일까. 아니면 아빠를 지켜준 것인지 알 수 없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줄 뻔했다. 반성 또 반성한다. 월요일이 다가오고 다시 일상이다. 애를 더 잘 챙기자. 제발 잘하자. 쫌.


호텔 2층에서 보이는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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