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밸리와 행운의 칠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4~5,0918~19

by 이음바다

그 험한 것이 내게도


그 험한 것이 내게도 오고 말았다. 17일 밤 잠들기 전 배가 약간 아팠다. 새벽녘 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챙겨온 약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공포의 발리 밸리가 온 것인가. 수질이 우리나라만큼 좋지 못해 장염으로 고생한다는 글을 많이 봤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탈이 났구나 했다.


그런데 설사를 안 한다. 혹시 전날 저녁밥을 너무 급하게 먹어서 체한 건 아닐까 싶었다. 소화제 먹으면 나을 수도 있겠구나. 너무 쉽게 판단해버렸다.


새벽 6시의 병원행


18일 종일 컨디션이 나빴다. 딱 사람 기분 나쁜 통증이 이어졌다. 현지 약을 사 먹었다. 통증은 약을 먹은 뒤에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 또 살아났다. 종일 뭘 제대로 먹지 못했다. 18일 밤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배를 쥐어짜는 느낌이 이어졌다. 잠들었다 깨고, 잠들었다 깨고를 반복했다. 새벽에 약도 두 번이나 먹었다.


결국 새벽 6시, 아들을 깨워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가 15분이나 친절하게 진료를 봐줬다. 장염 초기 증세라며 약을 네가지나 지어줬다. 내가 그동안 뭘 먹었는지 물어봤다. 아마도 매일 반 잔 이상 마신 과일주스가 문제인 듯하다. 과일과 함께 갈려 들어간 얼음이 장염의 원인인 경우가 많단다.


그 과일주스를 아들도 같이 마셨다. 그런데 이 녀석은 멀쩡하다. 물어봤더니 두 번 정도 배가 잠깐 아팠는데 금방 괜찮아졌단다. 먹은 양이 적어서인지 장이 나보다 튼튼한 건지 어쨌든 아들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나았다. 병원을 나서며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과일주스는 사 먹지 말자.“


진료를 기다리며. 이번에도 아들이 잘 기다려줬다
다행히 24시간 운영한다

예민한 두 사람


아들의 장은 튼튼하지만 멘탈은 역시 어린이다. 내 멘탈 역시 원래 어린이인데 아프고 못 먹으니 더 예민했다. 내내 아이와 말다툼을 했다. 참고 넘어가거나 그냥 해주면 될 것을 나도 모르게 꼭 토를 달고 잔소리를 해댔다. 지기 싫은 아들은 토라진 표정으로 짜증을 팍팍 냈다. 한두 번 눈물도 보였다.

건강과 컨디션이 나쁘니 서로 불편해진다. 병원을 더 빨리 갔어야 했다. 한 달 살기 이제 시작인데 몸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방전된 수영 레슨


18일 아이의 짜증이 늘었던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전에 수영 레슨 첫 수업을 한 것이다. 수영을 좋아하는 만큼 신나는 한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신나도 너무 신났던 것이다. 1시간 수업인데 40분이 지나자 체력이 방전됐다. 물을 달라더니 반 병을 원샷했다. 그 시간만큼 발차기를 쉼 없이 했으니 못 버틸 만도 하다. 오후에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또 수영하겠냐고 물으니 안 하겠다고 답했다.


쉼없이 발차기를 했다
분명히 중간에 쉬자고 했는데, 본인이 싫다더니 결국 방전됐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


전날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겠다 싶었던 것도 착각이었다. 등원 시간이 되자 가기 싫다며 입이 삐죽 나왔다. 일단은 어찌어찌 데리고 갔다. 전날보다 10분 더 일찍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3시 20분에 찾아갔다. 문 너머로 봤을 땐 제법 잘 노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오는 하원길에 다시 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세 번은 가보기로 약속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면 다음날인 금요일은 안 가고 다음 주 월요일에 가겠단다. 월요일 이후 계속 다니게 하려면 뭐라고 말할지 대응 잔머리 논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린이집 하원길, 제발 빨리 친해지자

방에서 보낸 시간들


발리 밸리에 시달려 바깥활동을 많이 못 했다.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들이 가장 많이 한 것은 노트북으로 종이접기 동영상을 보며 미니카를 접는 것이다. 최근에 빠져든 그리스 로마 신화 동영상도 많이 봤다. EBS키즈 채널의 올림푸스의 별 시리즈를 좋아한다.


침대에 누워 짜증과 잔소리가 늘어난 아빠가 얼마나 미웠을까. 중간중간 아들의 마음을 풀어준 것은 엄마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마다 순한 양이 되었다. 나름 의젓한 티를 내려는 것인지 엄마 앞에서는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아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엄마랑 만나서 노는 것임이 분명하다.


색종이접기에 집중! 저 눈빛을 보라

행운의 칠


아들은 어제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제 여덟 밤 남았다"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새벽 내가 깨웠을 때는 "엄마 오려면 일곱 밤 남았네"가 첫 말이었다. 이어서 "오늘은 운이 좋을 거야"라고 스스로 기운을 차리는 게 아닌가. 왜냐고 물으니 행운의 칠, 일곱 밤이 남았으니까라는 놀라운 논리를 근거로 댔다.


그리고 그 행운이 엄마에게 갈 거라고 했다. 배 아파 뒹구는 아빠를 옆에 두고 말이다.


또 밥먹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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