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과 야바 그래놀라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2, 250916

by 이음바다

첫 입수자


일어나자마자 수영장이었다. 아직 잠에서 다 깨지 못해 정신을 못 차리는 내 팔을 붙잡고 수영장으로 가자고 졸랐다. 마지막 식사는 어제저녁 6시쯤 먹은 기내식이 마지막이다. 배고프지 않냐고 묻지만 대답은 수영장이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호텔 2층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은 청소 중이었다. 아들은 청소가 끝나길 10분 정도 기다린 뒤 첫 입수자가 되었다. 처음 만나는 수영장에서 30분 넘게 놀고 방으로 돌아왔다.


청소 중인 수영장에서 비장한 첫 입수를 기다리며

망고 맛이 100%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끝냈다. 일찌감치 검색해 둔 걸어서 3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식당에서 첫 식사를 주문했다. 그제야 배가 고픈지 음식이 언제 나오냐고 계속 물었다. 망고주스가 먼저 나왔다.

"엄청 시원하고 망고 맛이 100%입니다."

한 모금하더니 진지한 맛평가가 이어졌다. 특별할 것 없는 햄치즈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종업원이 식당 이름처럼 원숭이가 그려진 작은 키링을 선물해 줬다. 아이는 벌써 이 식당을 사랑하게 됐다.

"저녁식사는 어디서 할까?" "해피! 몽키스!"

당연하다는 듯 이 식당을 골랐다.


이미 해피몽키스 식당 홍보대사

밥을 먹기 전에 가장 먼저 한 것은 ATM에서 현금을 찾는 것이었다. 숙소로 택한 호텔은 아이콘발리라는 대형 쇼핑몰 바로 앞이다. 은행이 안에 입점해 있었다. 카드 복제나 먹힘 사고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현금이 손에 들어오니 깊은 안심이 밀려왔다. 어제 아빠의 실수 연발을 본 아들도 다행이란 표정을 지었다.


또 함부로 한 약속


두둑한 지갑과 든든한 배, 넉넉한 마음으로 쇼핑몰 구경을 시작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2층 레고스토어와 3층 장난감 매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를 가야 할지는 이미 정해졌다. 한참을 즐겁게 구경하던 아들의 눈이 아득해진다.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진 것이다. 나는 또 함부로 약속을 해버렸다.

"우리 한 달 살기 잘 보내고 나면 발리에서 떠날 때 선물로 가지고 싶은 장난감 사줄게."

아이의 눈은 바로 의욕에 불타기 시작했다. 두 가지 조건을 붙이긴 했다. 우리가 챙겨 온 짐가방에 들어갈 크기의 장난감만 가능하다는 것과 한 달 살기 동안 말썽 피우지 않기. 이렇게만 된다면 나도 뭐라도 사주고 싶었다.


닌자고는 못 참지

얼어붙은 표정, 내일부터 실전


한 달 '살기'다. 여행보다는 일상을 지내려 계획했다. 무엇보다 한 달 독박육아를 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다음날부터 어린이집에 다닐 예정이었다. 한동안 아이의 놀이터가 될 곳을 미리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멀지 않았다. 이름에 원숭이가 들어가는 어린이집을 쉽게 찾았다. 대문의 안전요원이 바로 알아차리고 친절히 안내해 줬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길부터 아이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표정이 얼어붙었다. 내 손을 놓지 않고 자꾸 가까이 다가섰다. 왓츠앱 메시지를 주고받던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10여 명의 아이가 신나게 뛰어노는 놀이터도 함께 가봤다. 내 옆에 있는 아이만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내일부터 여기서 몇 시간씩 보내야 할 텐데. 빨리 적응하길 바라며 "여기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하고 아이의 동의를 자꾸 구했다. 짧은 방문 뒤 한동안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야바 그래놀라와 두 번째 수영장


10일 넘게 지낼 첫 숙소는 아침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는 간단한 음식들로 매일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미 햇살이 너무 뜨거운 한낮, 그랩을 불러 택시를 타고 마트로 향했다. 무엇을 살지 함께 리스트를 만들었다. 아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다. 야바 그래놀라 초콜릿 바나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초코를 사랑하는 6살이다.

"시리얼에 넣어 먹으면 어떻겠니?"

대답은 무조건 "예스, 예스."다.

어린이집이 불러온 긴장이 덕분에 다 풀렸다.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야바 그래놀라만 찾았다. 커다란 매대를 찾았을 때 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판매원이 다가와 시식도 시켜줬다. 이 순간 아들이 평생 발리를 무엇으로 기억할지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종류별로 모두 구입했다


빵과 시리얼, 각종 잼과 요거트와 우유, 햄과 치즈 그리고 야바 그래놀라 등을 잔뜩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간단한 식사 이후 휴식을 하기로 분명 합의했었다. 배가 차자 힘이 났나 보다. 챙겨 온 장난감으로 놀기 시작했다. 낮잠을 좀 잘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은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행복한 듯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수영장 가자."

아침 수영 이후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수영복을 다시 챙겨 입고 40분 넘게 물놀이를 했다.


밥 먹다 잠들기


계속 놀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수영장에서 끄집어냈다. 점심을 변변치 않게 먹었기에 저녁은 잘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얼른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찍 자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검색해 뒀던 주변의 다른 식당 이름을 슬쩍슬쩍 건네어봤다. 아이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에게 키링을 준 '해피몽키스'.


인도네시아 음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미고랭과 나시고랭을 하나씩 시켰다. 잘 먹어주길 기도했다. 저렴한 현지 식당에서 자주 식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 입씩 먹은 뒤 이번에도 맛평가가 나왔다. 결과는 합격. 볶음밥보다는 볶음국수, 해산물 베이스에 높은 점수를 줬다. 두 메뉴 모두 맛있게 잘 먹었다. 걱정 리스트가 또 하나 지워졌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아이의 행동이 느려졌다.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리고 밥을 먹다 잠들었다.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영장 물놀이 두 번, 바쁘게 여기저기 다니며 걸은 걸음이 만 보가 넘었다. 잠시 잠든 아들을 앞에 두고 나는 맥주 한 병의 여유를 찾았다. 비몽사몽의 아들 입에 밥을 몇 숟가락이라도 더 먹였다.


먹다 잠드는 행복?!
이미 눈이 감기기 시작

열 밤 자면 엄마가 와


잠시 정신을 차린 아들과 숙소로 돌아왔다. 얼른 씻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돌아보니 바쁘게 많은 것을 해낸 하루였다. 발리 적응 잘한 것 같냐고 물으니 바로 "응."이라고 답했다. 내일은 몇 가지 또 다른 적응을 해야 한단다. 며칠만 더 잘 지내보자고 속으로 부탁했다. 침대에서 중얼중얼하던 아들이 물었다.

"몇 밤 자면 엄마가 오지?"

"열 밤 자면 엄마가 와. 지금 빨리 잠들면 금방 아홉 밤 되겠네."

혼자 놀다 또 묻고 뒹굴거리다 또 묻고, 침대 위에서 5번 이상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엄마와 영상통화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시간은 저녁 7시 반이었다. 어제는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늦은 시간에 잔 것일 텐데 오늘은 근래 가장 이른 시간이 아닐까. 자기 전에 우리는 어제와 같은 약속을 또 했다. 이번에는 꼭 지켜주겠단다.

"아침에 일어나도 아빠 깨우지 않고 더 잘게."


쇼핑몰 바로 앞 해변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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