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첫 등원, 그리고 첫 웃음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3, 250917

by 이음바다

기적의 수면


한국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다. 반나절을 수면으로 채운 기적이 벌어졌다. 어젯밤 8시 전에 잠든 아이가 7시 반이 넘어서야 일어났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한 번 깼다. 바로 다시 잠들었다. 덕분에 나도 푹 잤다. 이렇게 길게 잔 게 얼마 만인가. 긴 이동과 적응의 피로가 거의 다 없어졌다. 시차도 극복한 기분이었다. 발리와 우리나라 시차는 1시간뿐이다.


LuvV6a39XlhbT3atU4dAfFeZVFw.jpg 아침부터 수학나라도

야바 그래놀라의 개봉


전날 산 재료들로 첫 아침을 챙겨 먹는다. 노래를 부르던 야바 그래놀라를 드디어 개봉했다. 시리얼과 함께 한 그릇 뚝딱. 간단한 샌드위치도 한 조각 만들어 달라더니 먹지 않고 남겼다. 음식을 약간씩 남기는 것은 아들의 나쁜 습관 중 하나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나는 또 잔반 처리에 나섰다.


첫 영어 수업


이 날도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오전에는 영어 1:1 튜터와 첫 수업이 있었다. 오후에는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했다. 선생님과 약속한 수업 시간은 오전 9시 반. 5분 일찍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마중 나가 처음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수줍어하며 멀찍이 섰다.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호텔 로비의 별도 공간에 두 사람을 두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수업 시간은 1시간 30분. 나도 누구보다 긴장됐다. 선생님 말을 알아들을까? 알아들어도 대답 안 할 것 같은데? 중간에 그만한다고 뛰어오면 어쩌지? 방문 앞을 기웃거리며 멀리서 지켜봤다.


기우였다. 아이와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자주 들렸다. 선생님은 몸으로 하는 놀이를 많이 준비했다. 게임도 여러 개 가져오셨다. 쉬는 시간도 없이 한 시간 반을 꽉 채웠다. 마치고 인사를 하는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선생님과 밝게 인사하며 금요일에 또 만나자고 했다.


uJxeNzpLZoxL1ZyYYYorPyfRDWE.jpg 로비에서 웃음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딱 20분만 수영을


아들의 표정이 밝았던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영어 수업이 끝나면 수영을 하려고 한 것이다. 수업이 끝난 것은 11시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12시다. 여유를 두고 움직이고 싶었다.


하지만 또 수영장이 이겼다. 계속 조르는 아들과 딱 20분만 수영을 하기로 약속했다. 물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래시가드도 입지 않는다. 간단한 차림으로 수영장을 즐겼다. 시간이 없어 샤워는 못 했다. 몸만 대충 마른 채 등원 준비를 마쳤다. 물통과 색종이를 챙겨 넣은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섰다.


QFGXc7ZvnXH2wuWNPKIAci57lbs.jpg 자신만의 수영 놀이 방법을 계속 터득하고 있다

굳어버린 표정


옷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아들은 다시 얼굴이 굳었다. 긴장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안 가면 안 되냐는 말도 두 번 했다. 우리는 발리에 오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대해 얘기했다. 딱 3일만 가보고 결정하자고 약속했다. 세 번 가봤는데도 재미없고 힘들면 다른 곳을 찾기로 했다. 신사 아들은 미리 해둔 약속을 번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핑크색 가방을 메고 걸어서 5분 거리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이만 그랬겠나. 내가 더 긴장됐다. 우리나라에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보다 더 심했다. 12시보다 10분 일찍 도착해 안내를 받았다. 식당 한편에 앉아 밥을 한 숟가락 뜨는 장면까지 보고 자리를 피했다. 처음 등원시킬 때 부모가 빨리 자리를 피해 줘야 한다고 배웠던 것이 떠올랐다. 짧은 영어로 선생님께 이런저런 당부를 두서없이 전했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3iDXnB7VeALes4mHTWmwWwSodNw.jpg 잘 놀면서

4시간의 기다림


어린이집에 맡기기로 한 시간은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다. 4시간이다. 앞으로 가는지 옆으로 가는지 모를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조금 일찍 데리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세 시 반쯤 하원길에 나섰다. 멀리서 놀이터를 바라보니 웬걸. 선생님과 그물 오르기를 하며 잘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말과 영어가 섞여서 들렸다. 여러 놀이기구를 오가며 신나 하는 모습이었다. 장 너머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가방을 찾으러 뛰어갔다. 선생님도 이음이가 첫날치고 잘 놀았다고 안심되는 말을 해주셨다.


첫 등원 기념 아이스크림


첫 등원 기념으로 어린이집 바로 앞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잘 놀고 와서 아이스크림까지. 아이 입장에서는 이런 호사가 없다. 한참을 서성이다 시식까지 했다. 신중하게 캐러멜 맛으로 골랐다.

단 것을 입에 문 아이에게 야금야금 어린이집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들이 잘 챙겨주셨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많이 놀지는 않은 듯하다. 결정적으로 한국어를 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고 했다. 잘 적응한 것 같다. 내일 또 갈 거냐고 물으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이스크림을 흡입했다.


keTqrRTX6Nk4jyoI4VX2vxQV26M.jpg 아이스크림도 매일 사달라고 할거 같은데

패턴이 된 수영장


숙소로 돌아온 우리가 한 일은? 당연히 수영장이다. 다음 일정이 없기에 신나게 넉넉하게 놀았다. 하원 이후 수영장은 이제 패턴이 될 듯하다. 한 시간 물놀이를 마치고 샤워까지 했다.


저녁식사를 할 차례다. 우리가 갈 식당은? 역시 해피몽키스다. 아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종업원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해 줬다. 아들은 식사보다 먼저 나온 수박주스의 반을 원샷에 없앴다. 맛평가에 재미가 들렸나 보다. 수박주스부터 크루푹 과자까지 모든 메뉴에 코멘트를 남겼다.


걱정을 뛰어넘는 아이의 적응력과 해맑음을 새삼 느낀다. 발리에 온 지 이틀이다. 벌써 일상 패턴과 단골이 생겼다.


-twKw4NJb3tkHAdxE9_qg5Hp2dc.jpg 현재까지 1등은 수박주스
Yyhs0aUN1fjoJ-BgKlczPPgHYwA.jpg 숙소 바로 맞은편이 이아콘발리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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