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1, 250915
“엄마가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하면 되지.”
출발 전날 밤, 여섯 살 아들이 한 말이다. 나중에 엄마가 그리울 자신을 다독인 걸까, 잠시 멀어질 엄마를 위로한 걸까. 곧장 잠들지 못하더니 그 말을 툭 내뱉고선 금세 곯아떨어졌다. 마지막 밤이라며 엄마와 자겠다고 고집하던 아이였다. 발리 한달살기가 시작됐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언젠가 아이와 덜컥한 약속이 있다. “외국에서 한 달쯤 살아보자.” 그때는 그냥 흘려보낸 말 같았다. 아이의 기억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 아들은 가끔 어디로 언제 갈 거냐고 물어왔다. 휴직을 할까 말까 갈팡질팡하던 지난해, 이 약속이 마음에 계속 남아 결국 휴직원을 쓰게 만들었다.
한달살기를 언제 어디서 할까? 시기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직장에 묶여 있는 아내가 합류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맞추면 됐다. 올해 추석 연휴가 역대급이라 그 앞뒤로 정했다. 고민은 장소였다. 이리저리 저울질 끝에 결론은 발리였다. 다른 문화 경험, 영어 공부, 멋진 자연, 적당한 예산, 그리고 나의 휴식까지. 모든 조건을 적절히 만족시켜 줄 곳이라 판단했다.
티켓을 끊은 뒤부터 아이에게 발리 이야기를 자주 했다. 출국이 한 달 앞, 한 주 앞, 하루 앞으로 다가올수록 더 자주. 주변에서도 아이에게 축하와 응원을 건넸다. 아이에게 직접 생각을 묻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전해줬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는 두근두근한다고, 영어학원 선생님에게는 기대된다고 했단다. 공항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설레는 표정이었다.
김해공항에서 발리 직항, 드디어 출발이다. 7시간, 아이와 함께 버티기에 만만치 않은 장거리 비행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 출발해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이다. 장난감과 색칠놀이, 색종이와 간식까지 단단히 챙겼다. 이륙하자마자 잠들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한 시간 뒤 눈을 뜨자 기내식을 챙겨 먹였다. 기운을 차린 아이는 한 시간여를 혼자 잘 놀았다.
오후 8시쯤 동중국해 상공 어딘가. 기운을 다 쓰고 평소 잠잘 시간이 되자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받아주고 저렇게 챙겨주다 결국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노트북에 받아둔 넘버블록스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최애도 한계는 있었다. 풀린 눈으로 영상 보기가 한 시간 반을 넘기니 지루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수면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 무릎 위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아이. 드디어 기장의 착륙 방송이 나왔고, 불빛 반짝이는 깊은 밤의 덴파사르에 도착했다.
출국 전 아이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언제나처럼 엄마 아빠 모두 함께가 아니야. 이런저런 일을 아빠 혼자 처리할 거라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어. 네가 좀 더 기다려줘야 해."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는 의젓하게 잘 기다려줬다. 출입국 절차에서 여러 번 줄을 설 때도, 짐을 정리하거나 자리를 옮길 때도 다른 말 없이 제자리를 잘 지켰다.
내가 연거푸 실수를 할 때도 그랬다. ATM에서 자꾸 오류가 났다. 해외결제카드 비밀번호를 잘못 기억한 것이었다. 출금 불가 상태가 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줄을 다시 서서 안 되는 카드로 재시도하고, 다른 ATM에 가서 또 시도했다. 시간을 한참 허비해 스스로 짜증이 극에 달할 때도 아이는 잘 기다려줬다. "엄마한테 이르지 않을게"라는 농담까지 했다. 오히려 위로를 받은 쪽은 나였다.
우여곡절 끝에 호텔 체크인. 발리 시간 새벽 1시, 우리나라 시간 새벽 2시였다. 그래도 바로 잘 수는 없었다. 벌레기피제를 급히 찾아 침대에 뿌리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고양이 세수만 한 뒤에야 함께 누워 잠을 청했다. 아마도 아들 6살 평생 가장 늦은 취침시간일 것이다.
"푹 자자. 일어나서도 또 자자." 간청이 섞인 당부를 아들에게 여러 번 하고 나도 잠들었다.
나는 미처 끄지 못한 휴대전화 알람 때문에 아침 6시 반에 눈이 떠졌다. 겨우 다시 잠든 7시 반, 아들이 나를 깨웠다.
"아빠, 아침이야." 발리에서의 첫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