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6, 250920
토요일 아침이다. 평일보다 더 분주했다. 발리 사파리에 가기로 한 것이다. 첫 주말을 맞아 여행다운 일정을 준비했다. 동물원과 사파리를 정확히 구분하는 아들도 신이 났다. 내가 동물원이라고 하면 '동물원 아니고 사파리'라고 매번 정정해 주셨다.
종일 놀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의 체력을 고려하면 반나절이 적당하다 싶었다. 아침 8시 반에 예약한 차가 호텔 앞으로 왔다. 사누르에서 사파리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걸렸다. 딱 입장 시간에 맞춰 사파리에 들어섰다.
규모가 상당했다. 버려진 오래된 도시가 숨겨진 정글 같은 느낌이다. 입구를 통과하면 잠시 버스를 타고 동물원 구역으로 이동한다. 들어서자마자 표범을 만날 수 있다. 코주부원숭이, 코모도 도마뱀, 오랑우탄처럼 평소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힘든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보다 내가 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양한 공연도 즐겼다. 호랑이 쇼와 코끼리 쇼가 압권이었다. 호랑이가 나무 타는 모습과 수영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단순한 동물 쇼에 그치지 않고 호랑이가 발리 문화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도 잘 녹여냈다. 코끼리 쇼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과 코끼리의 공존이라는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아들도 집중해서 공연을 끝까지 봤다.
각각 15분 정도의 공연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동물 공연은 돌아서면 늘 찝찝하다. 결국 인간이 단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육사가 던지는 고기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호랑이 모습은 마치 큰 고양이 같기도 했다. 정글의 왕 같지 않았다. 코끼리가 앞발을 들거나 고리를 걸어주는 행동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괜히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동물원의 딜레마는 언제나 어렵다.
연이어 세 개의 공연을 보고 나니 출출하다. 발리 사파리에는 사자가 보이는 식당이 있다. 점심식사 장소로 다른 곳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종업원이 사자가 잘 보이는 자리로 안내해 준다. 큰 창 너머 수사자 한 마리가 바위 위에 근엄하게 앉아 있고 그 아래 암사자가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장면만으로 이 식당의 비싼 음식값은 용서가 된다.
체력이 떨어진 아들은 사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발리에 와서 빠져버린 그리스 로마 신화 올림푸스의 별을 보느라 눈이 빠진다.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사자가 움직일 때마다 "이음아, 이음아, 저기 봐 저기" 해도 아들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배를 채운 뒤 마지막 순서는 사파리 트램 버스다. 30분 동안 사파리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발리 사파리는 인도네시아 구역, 인도 구역, 아프리카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버스는 각 구역을 순서대로 돌았다. 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져 더 재밌었다.
차창 너머 동물들의 움직임을 아들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직접 담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찍기도 했다. 아는 동물이 나오면 흥분했고, 처음 보는 동물이 나오면 신기해했다. 쌍봉낙타와 코뿔소 같이 책에서는 봤지만 실제로 처음 보는 동물들을 가장 좋아했다. 30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사파리를 빠져나와 다시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다. 정확히 6시간을 잘 보냈다.
더 어릴 때부터 여러 동물원을 많이도 다녔다. 특히 해외여행에서는 좋은 동물원이 있는 도시면 빼놓지 않고 갔었다. 아들은 자연과 동물에 조금씩 더 친숙해지고 있을까? 그저 구경거리로 보고 끝나는 걸까? 다양한 동물들을 잘 지키고 환경을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까? 사람이 데리고 보여주는 도구처럼 느끼게 될까?
6시간을 돌아보니 내 머리가 아파진다. 하지만 아들은 잠시도 진지해줄 틈을 주지 않는다. 식당에서 다 못 본 올림푸스의 별을 집에 와서 이어서 보여준다고 약속한 것을 기가 막히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드님께 조금이라도 나은 시청 환경을 제공해 드렸다. 옆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 나의 피곤함보다 아들의 기억이 더 오래가길 바란다.
* 사파리에서 만난 동물 사진을 여러 장 덧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