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상봉, 발리에서 다시 시작된 진짜 가족 여행

[육휴아빠장꾸아들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 12~13, 0926~27

by 이음바다

공항에서 기다릴게


드디어 엄마가 오고 있다. 김해공항에서 5시에 이륙한 엄마는 밤 11시가 넘어서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며칠 전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오는 날 호텔에서 기다리겠느냐, 공항에 마중을 가겠느냐. 잠시 고민하더니 공항에서 맞이하겠다고 정했다. 하룻밤을 버틸 일정이 필요해졌다.


짙은 녹색의 발톱


저녁식사 이후 시간이 문제였다. 우리는 마사지샵에 가기로 했다. 마사지를 받겠다던 아들이 막상 샵에 들어가니 마사지를 거부했다. 누가 몸을 만진다는 게 싫었던 것이다. 네일과 페디 케어를 받는 것으로 변경했다. 마사지사들이 손발을 씻겨주고 정리해 주는 동안 얌전했다. 발톱에는 색도 입혔다. 아들은 고민 끝에 짙은 녹색을 골랐다.


인생 첫 페디큐어

변신 완료

진상 손님이 된 아빠


아들이 케어를 받는 동안 나는 다른 방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내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 계속 신경 쓰였다. 마사지사에게 아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 달라 계속 요구했다. 한 번은 문을 열어 아들과 눈인사도 했다.


진상 손님이 된 것이다. 마사지사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자신을 못 믿는다고 여겼을 수 있다. 마사지를 마치고 서둘러 곁으로 갔다. 아들은 달라진 자신의 발 모습을 신기한 듯 계속 쳐다봤다. 1시간의 불안감이 사라졌다. 한 달 살기 동안 다시는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잠을 쫓는 아이스크림


마사지샵을 떠나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공항 도착 시간은 밤 10시 반이다. 잠이 들려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마지막 버틸 힘이 충전됐다. 우리는 출국장 입구의 편의공간인 클룩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은 이미 잠에 취한 상태였다. 그저 눈만 뜨고 있는 수준이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옥토넛 영상을 보며 버텼다.


잠에 취한 모자상봉


아내가 12시 반에야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드디어 모자상봉. 달려든 엄마와 달리 아들은 멍했다. 태블릿의 동영상을 끄자 엄마와 대화가 터졌다. 엄마가 챙겨 온 애착이불에 마음이 녹았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며 보고 싶었다는 말을 대신했다. 아이는 달라졌다. 엄마를 만나자 더 밝아지고 신이 났다. 이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어깨가 가벼워진 순간


그동안 혼자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꽤 부담이었다. 아내가 도착하자 그 무게가 확 덜어졌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둘이서 함께 돌볼 수 있다는 안정감. 생각보다 큰 위안이었다.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을 생각했는데 아들의 반응은 멍했다
조금씩 엄마를 더 찾기 시작했다

잠 대신 떠난 길


우리는 바로 잠을 청하러 호텔로 가지 않았다. 공항 픽업으로 시작하는 바투르산 일출 지프투어를 바로 출발했다. 이미 비몽사몽인 아이를 픽업차에 태웠다. 27일 밤부터 28일까지 아이가 잠을 잔 시간은 바투르산으로 가는 차에서 2시간, 투어 중 지프차에서 1시간, 호텔로 돌아오는 차에서 2시간이 전부다.


나의 수면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가만있으면 눈이 감겨왔지만 눈앞의 장관이 잠을 깨워줬다. 새벽 3시 반 지프투어 집결장소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이 밤하늘을 본 것만으로 투어가 성공적이라고 이미 결론 내렸다. 별이 잘 보인다는 것은 하늘이 맑다는 뜻이다. 일출도 잘 보일 거라는 생각에 설렜다. 쌀쌀한 바투르산 날씨에 대비한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예약해 둔 빨간색 지프차로 옮겨 탔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은 게 이 정도

이제 진짜 가족 여행


크지 않은 지프차의 뒷자리에 아내와 나, 그리고 아들이 함께 탔다. 이제 진짜 가족 여행이 됐다. 연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프가 산길을 오른다. 엉덩이가 시트에 붙어 있을 틈이 없이 시종일관 덜컹였다. 엄마의 무릎에 누운 아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프 안에서도 계속 잘 잤다.


백 대의 지프와 떠오르는 해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이미 족히 백 대는 되어 보이는 지프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차도 뜨는 해가 잘 보일 곳에 주차했다. 작은 매점에서 따뜻한 차와 코코아로 몸을 녹였다. 잠에서 깬 아들은 초콜릿과자를 집어 먹었다. 6시를 넘어서자 조금씩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산 능선이 너머로 동그란 해가 올라왔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졌다. 분명 피곤한 일정이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순간이라 특별했다. 뜨는 해를 보며 가진 생각은 각자 달랐을거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눈물을 훔치며 겨우 건진 가족사진
붉고 둥글게 떠오른 해

엄마 아빠는 포즈 중, 아들은 버티기 중


햇살이 더 강해지기 전에 사진을 남겨야 한다. 백 대가 넘는 지프와 함께 온 이들이 포즈 취하기에 바빠졌다. 우리도 뒤질 수 없지. 그런데 아들이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수면 부족과 피곤에 녹아 모든 게 다 싫은 상태였다. 지프 위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어떻게든 셋이 함께 나오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온갖 잔꾀를 부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들은 두 번이나 울음을 터뜨렸다. 흙먼지 날리는 걸 막아준다며 가이드가 챙겨준 마스크를 벗는 것도 거부했다.


새벽부터 풀 메이크업에 커플티, 원피스까지 챙겨 입고 온 다른 관광객들 사이로 우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바빴다. 그래도 친절한 가이드의 셔터는 계속 눌러졌다. 아내와 나라도 틈틈이 자세를 잡았다. 아들도 살짝살짝 끼워가며 겨우 가족사진 몇 장을 건졌다.

세 명 모두 꽤나 수척하다
엄청난 지프 행렬로 장사진


아직 끝나지 않은 투어, 블랙라바로


투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지프를 타고 블랙라바로 이동했다. 40분 정도 걸렸다. 발리는 화산섬이다.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표면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 블랙라바다. 이름 그대로 검은 돌과 흙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만들어져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장관을 배경으로 다시 사진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는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을 찾아다니길 좋아한다. 가는 길이 편치 않고 주변 환경이 거칠어 아이에게는 힘들때가 잦다. 그럼에도 아내와 나는 늘 아들과 함께 가길 택한다. 아이가 크면서 이 순간들을 기억할까.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가 함께 본 것들이 아이 안에 쌓여갈 테니까. 그 장면은 기억 못해도 같이 있었다는 것은 남테니까.


투어 업체를 고른 단 하나의 이유


관광명소답게 발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투어업체가 있다. 그중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골라 투어에 참가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진을 잘 찍어준다는 후기 때문이다. 아이와 여행을 하다 보면 셋이 함께 나오는 가족사진을 남기기가 만만치 않다. 투어와 가이드의 힘을 빌려 오래 간직할 사진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블랙라바에서도 아들은 카메라를 연신 피했다. 그럼에도 가이드는 솜씨 있게 순간순간 우리의 모습을 다 담아줬다. 사진 찍어주기에 진심인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밤을 새운 보람이 없었을 것이다. 결과물을 받아 든 나와 아내는 만족했다. 발리에서 지내는 동안 웬만하면 투어는 이 업체와 함께하려고 한다.

셋 다 웃은 것은 이 사진 뿐인가 보다
투어가 끝날 때쯤 기분이 나아졌다
끝없는 검은 평야

해변 대신 이불속으로


픽업 승용차로 옮겨 타고 호텔이 있는 사누르로 돌아왔다. 낮 11시 반이었다. 긴 비행에 지친 아내, 차에서 쪽잠만 자며 밤을 새운 나와 아들 모두 피로에 절었다. 간단히 짐을 풀고 호텔에서 짧지만 깊은 휴식을 취했다. 저녁식사를 앞둔 때에야 살며시 호텔 밖으로 발을 뗐다. 가깝고 익숙한 아이콘발리를 한 바퀴 돌아봤다. 식사는 이제 아들을 기억하고 음식 간까지 조절해 주는 해피몽키스에서 해결했다. 이미 사누르 현지인 모드인 아들은 엄마에게 이곳저곳을 알려주고 설명하는 재미에 입이 멈추지 않았다.


해변을 살짝 걸어볼까 했지만 세 명 모두 일찍 잠드는 것에 동의했다. 누가 먼저 잠드는지도 모르는 숙면의 밤을 보냈다. 27일 밤 나의 삼성헬스 수면점수는 100점이다.


엄마와 손잡고 밤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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