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낭사리와 자전거에서 잠든 아이

[육휴아빠 장꾸아들 따뜻엄마의 발리 한달살기] Day-14, 250928

by 이음바다

엄마의 놀라운 수완


모두가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옮긴 호텔은 조식이 나온다. 토스트와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이전 호텔에서는 아들의 아침식사를 시리얼과 빵으로 대충 챙겨줬었다. 제대로 못 먹이는 것 같아 늘 미안했다. 근사한 요리의 식사가 나오니 죄책감이 덜어졌다.


아들이 몇 번 집어 먹더니 배부르다며 더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놀라운 수완이 발휘됐다. 시럽을 더 부어줘서 한 입, 딸기잼을 다르게 발라 호기심을 유도한 뒤 한 입, 다른 음료와 함께 먹여보며 또 한 입. 이런 식으로 적당한 식사량을 챙겼다. 배가 통통해질 때까지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KakaoTalk_20251003_022703218_02.jpg 얼마만의 식사 다운 아침인지

1일 1 수영장 행진


새로운 호텔의 새로운 수영장이다. 아침 식사 뒤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전 호텔의 수영장보다 물이 깨끗했다. 여러 깊이로 나뉘어 있어 아들이 서 있을 수 있는 구간도 있었다. 약간 기역자 모양으로 꺾여 있기도 하다. 이전과 다른 수영장에서 아들은 다른 재미를 금방 찾았다. 그렇게 1일 1 수영장 행진은 이어졌다.


아이콘발리 본연의 목적


가족 모두 전날의 피로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일요일이기도 하다. 투어나 별다른 일정을 가지지 않고 호텔 주변에서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가장 만만한 곳은 역시 아이콘발리다. 아들과 둘이 지낼 때 아이콘발리에 가는 가장 큰 목적은 식사나 간식이었다. 해변으로 가는 통로로 이용하기도 했다.


엄마가 합류하니 달라졌다. 아이콘발리가 본연의 목적을 찾았다. 쇼핑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가방 매장을 찾았다. 엄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원했던 크기와 마음에 드는 색상의 가방을 구매했다. 바로 상표를 떼고 메려는데 아들의 눈빛도 반짝였다. 마음에 든 것이다. 자신이 메고 다니겠다며 가방을 건네라고 요구했다. 아들에게 맞게 끈 길이를 조정했다. 가방을 멘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어진 해변 산책 시간 동안 아들은 새 가방을 으쓱이며 메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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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에 집중한 엄마와 기다리는 아들, 가방 개시는 아들의 몫

솜사탕에 새파랗게 물들다


산책은 놀이터 식당으로 이어졌다. 이 식당은 일요일마다 여러 키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점심식사도 하고 쉬며 놀 수 있어 미리 예약을 해뒀다. 식당에 들어서자 아들은 이번에도 놀이터로 뛰어갔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다. 금세 땀이 흐르는 햇살이 강한 날이었다. 아들은 머리가 땀에 젖는 줄 모르고 엄마에게 놀이터 그물 오르기 실력을 뽐냈다.


아들의 입과 치아가 새파랗게 변했다. 키즈데이를 맞아 솜사탕이 제공되고 있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부터 솜사탕 하나를 눈 감추듯 뜯어먹었다. 파란색 설탕물에 물든 것이다. 엄마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아들에게 보여줬다. 흠칫 놀라더니 입과 치아를 바로 씻고 왔다. 뒤이어 나온 피자와 햄버거를 먹으며 이가 아직 파랗냐며 엄마에게 묻고 또 물었다.


KakaoTalk_20251003_022703218.jpg 파랑색을 골랐다

아들이 만든 짜낭사리, 존중의 첫걸음


발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짜낭사리다. 힌두교 문화와 영적인 삶의 상징이다. 야자수 잎으로 만든 작은 그릇에 꽃과 음식 등을 올린다.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신성한 것이라 절대 손대지 않아야 한다. 한 달 살기를 준비하며 꼭 지켜야 할 것 중 하나로 여러 곳에서 강조되어 있었다. 아들에게도 몇 차례 설명했었다. 현지의 풍습이 재밌는지 아들은 짜낭사리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만지면 안 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힌두교 신에 대한 관심도 더해졌을 것이다.


키즈데이 프로그램 중에 짜낭사리 만들기가 있었다. 짜낭사리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얘기에 아들은 식사 중에 만들기 프로그램 자리로 뛰어갔다. 선생님이 준비해 준 야자수 잎을 스테이플러로 박아 모양을 만들었다. 색색의 꽃을 올려 장식하면 끝나는 간단한 만들기였다. 단순해도 스스로 만든 짜낭사리는 특별했다. 엄마에게 깜짝 선물로 줄 거라며 테이블로 짜낭사리를 숨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짜잔 하며 보여준 뒤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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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짜낭사리를 엄마에게 숨겨서 가야지

호텔 방 입구에 모신 짜낭사리


엄마에게 짜낭사리의 의미를 설명하며 우리 호텔 앞에 두자고 했다.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식당에 부탁해 잘 포장한 뒤 돌아오자마자 방 입구에 조심히 모셨다. 짜낭사리는 아들이 다른 문화를 알고 이해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있다. 그저 작은 제물이나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발리에서 우리가 배워가는 존중의 방식이라는 걸 아들도 조금은 느꼈을 것이다.


짜낭사리는 만들지만 친구는 못 만들고


일요일의 놀이터 식당에는 어림잡아 10명이 넘는 아이가 뛰어놀고 있었다. 한국인 아이도 3명 이상 보였다. 내심 이번에는 다른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말이 통하는 한국 아이와는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짜낭사리 만들기를 할 때였다. 이미 두 명의 한국 아이가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9살과 6살의 남매다. 동갑인 여자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살인지 이름이 뭔지 물었다. 아들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남매는 고맙게도 계속 말을 걸어주고 만들기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가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지만 아빠가 시켜서 억지로 한 것일 뿐이었다. 얼마 뒤 시작된 작은 운동회에 아들은 참가하지 않겠다며 버텼다. 2시간은 놀고 나올 줄 알았던 놀이터 식당에서 우리는 한 시간 조금 넘게 앉아 있다 일어났다.


KakaoTalk_20250929_235707710_06.jpg 짜낭사리 만들기에 집중

함께 달리진 못해도


아내가 발리 사누르에 오면 꼭 함께 하고 싶던 것이 있다. 해 지는 시간 해변 자전거 타기다. 아내는 노을을 좋아한다. 아들과 노을길을 달렸던 행복감을 아내와도 나누고 싶었다. 호텔에서 쉬고 있는 가족들을 보채 해변으로 나섰다. 자전거를 두 대 빌렸다. 한 대는 아들과 내가 타고 아내는 따로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자전거를 끌고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기다렸다 물어보니 좁은 길에 사람이 많아 타지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 사람과 부딪힐 뻔했단다. 겁이 나 달리지는 게 힘들다고 했다. 결국 아들과 나만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아내는 경치 좋은 해변 한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 줬다. 함께 달리지는 못하고 해변의 모습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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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지는 못해도 기념사진은 야무지게

Your kid is sleeping


엄마 사정과 상관없이 아들은 신이 났다. 며칠 만의 라이딩에 평소보다 더 재잘거렸다. 넘어졌던 기억의 무서움도 옅어져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특히 둔턱이 나오면 '덜컹' 하거나 '쿵쾅' 하며 항상 소리를 냈는데 조용했다. 길 앞에 사람이 많아 잠시 속도를 줄였을 때 지나는 행인이 말해줬다. "Your kid is sleeping." 뒤를 돌아보니 눈을 감은 채 머리를 휙휙 돌리며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예약한 시간보다 빨리 자전거를 반납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여유 있게 쉬자고 한 날에도 나는 아들을 또 피곤하게 만들었나 보다. 그래도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잠든 얼굴이 평온했으니까. 한 달 살기가 끝날 때까지 투정 없이 이렇게 잠들게 해달라고 방 입구의 짜낭사리를 향해 기도했다.


사누르 해변의 헤드뱅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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