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를 위해
"아빠 뭐 해?" 하며 아들이 달려온다. 나를 보자마자 땅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손톱을 깎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손톱을 아무데서 아무렇게나 깎는다며 대성통곡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손톱을 깎고 있었다. 당장 멈추라고 소리 지른다. 이미 잘려 떨어진 손톱을 빠짐없이 주워 잘 버리라 소리치며 눈물을 뚝뚝 떨궜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손톱 먹은 쥐> 설화를 재밌게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있다. 함부로 버린 손톱을 백년 묵은 쥐가 먹고 사람으로 둔갑했다는 줄거리다. 신체의 작은 부분도 소중히 하라는 교훈적인 구전 동화가 6살에게는 공포의 근원이 됐다. 진짜로 쥐가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심성 없는 아빠가 손톱을 마구 튀기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저 손톱을 먹은 가짜 아빠가 나타날까 봐.
"아빠로 변신한 쥐가 올 것 같아?" 6살 아이는 상상만으로 무서운지 더 크게 운다. 상황이 재밌어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비웃는 인상을 줄까 봐 꾹 참았다. 일단 진정시키기 위해 손톱 깎기를 멈췄다. 이미 자른 손톱들은 휴지로 잘 싸서 버렸다. 아들은 버리는 과정을 다 지켜봤다. 작은 조각 하나도 모두 찾는 매의 눈으로.
눈물은 그쳤지만, 믿음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의 샤워 시간, 엄마와 씻기로 했다. 옷을 다 벗은 6살은 쉬이 샤워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빠가 몰래 손톱을 깎을거라 의심하는거다. 손톱깎이를 아이에게 건넸다. "아빠 손톱 안 깎아."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아이는 엄마와 비밀장소 (화장대 서랍 안)에 손톱깎이를 숨긴 뒤에야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를 마친 뒤 물기도 다 닦지 않고 뛰쳐 나왔다. 가장 먼저 손톱깎이가 숨긴 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동화를 진짜로 생각하는 아이, 아직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 동심과 상상력을 지키기 위해 여직은 애쓰는 시간이다. "저 아이에게 지금은 네가 온 우주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어린 딸을 돌보며 힘들어하는 금명에게 엄마 애순이 해주는 말이다. 엄마와 아빠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매사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현실과 동화의 차이를 알게 될거다. 아빠가 슈퍼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거다. 엄마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도 확인할 것이다. 부모로써 마침내 다가올 그 마지막 순간까지 긍정과 행복을 가득 담아주려 노력하고 있다.
아이가 3살일 때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뇌리에 꽂히는 말을 들었다. “자녀를 나와 아내에게 온 귀한 손님처럼 여겨라.”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김붕년 교수의 조언이다. 우리 부부는 이 문장을 육아관으로 삼았다. 손님,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사람이다. 그 때를 벌써부터 염두에 둔다. 독립의 순간에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 일찌감치 다짐한다.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살지는 그의 선택이다. 우리는 스스로 길을 만드는 성인이 될 때까지 곱게 키우며 좋은 기억을 하나라도 더 심어주려 애쓰고 있다.
손톱을 먹은 쥐가 변신한 가짜 아빠가 나타날까 두려워 울었던 6살의 어느 날, 부모도 이런 기억들을 쌓고 남겨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손님이 떠나고 나면 나와 아내는 이런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며 살지 않을까. 가끔 찾아올 손님에게 다시 얘기해 줄 기회가 생기면, 그 날의 울음을 기억은 할지 어떻게 답할지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