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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Sep 07. 2021

당신은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지독한 저임금 시대를 보내고 있다.


사회초년생, 경력 무관직 대부분이 최저임금으로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임금 책정에 관심이 없다. 월급은 최저임금으로 결정되고 최저임금은 정치가 결정한다. 최저임금 노동자인 나는 이렇게나 정치와 연관이 깊은 사람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최저임금 노동자가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투쟁은커녕 요구조차 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나를 보면 누군가 마음을 달리 먹고 내 월급을 올려 줄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한다. 대상이 불분명하다. 차라리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부르짖어 볼 텐데.


우리가 태어났을 때보다 그나마 나아진 게 지금의 현실임을 알고 있기에 더 힘든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며 위안 삼기 딱 좋다. 나아지고 있으니까 열심히 살면서 기다려보자며.


혹은 무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그랬냐며, 그러니까 스펙을 열심히 쌓았어야지 그랬냐며. 글쎄.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기업 노동자들 또한 본인들이 생산하는 가치에 비해 훨씬 덜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많이 받는 것이지 본인들께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 하고 있는 일, 만들어내는 가치, 제공한 노동력과 전문성에 적합한 연봉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 무엇으로 판단하고 있을까? 모두들 너무 적게 받고 있다.


상담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매번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포인트가 이런 지점이다. 진짜 열심히 성실하게 착하게 일만 하는데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몸이 부서지도록 하루 12시간 노동을 회사에 바친다.


한 공장의 월 매출이 약 300억이라 한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이 공장의 직원은 150~200명 사이. 이 공장을 관리하는 회사는 따로 있으며, 그 회사를 소유한 회사는 또 다른 회사이다. 이름도 전혀 다른 그 회사를 노동자들은 '본사'라고 부른다. 본사는 이런 공장을 여러 개 갖고 있다고 한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이 공장의 직원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파견업체 소속이다. 누가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상관없다. 불법파견이다.


회사에 충성을 다 한다. 충성심 때문인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수당 때문이다. 하루 12시간 일해야 추가되는 수당을 받기 위하여, 일주일 중 6일 만근을 하면 추가되는 수당을 받기 위하여, 그렇게 매주 결근 없이 쌓이는 수당을 받기 위하며 몸이 부서져도 출근한다. 이런 장기간 노동은 불법이다.


여기서 겪은 성폭력은 누구에게 말하기도 어렵다. 상사는 공장 사람이고, 그 윗 상사는 본사 사람이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파견업체 직원은 이 공장에서 누가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걸. 다른 공장으로 보내줄 수는 있지만 이 공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는 없다. 본인도 공장에 인력을 파견하는 을이니까.


공장은 어느 날 그냥 노동자에게 이제 그만 나오라고 말한다. 이 통보는 공장이 하지 않고 파견업체가 한다. 노동자는 얼굴도 모르는 파견업체 직원에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해고예고 수당도 없는 해고, 불법이다.


여기 노동자들에겐 근로계약서가 없다. 근로계약서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회사는 근로계약서를 1부만 작성하며 혼자 보관한다. 잘려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화는 나니까 동료들과 술과 수다로 풀어버리고 다음날이면 다른 불법파견업체를 통해 다른 공장으로 출근한다.


이들은 실업급여를 모른다. 고용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을 할 때 공장은 노동자에게 4대 보험에 가입할 것인지 물어본다. 돈 만원이 소중한 노동자들은 4대 보험에 들지 않는 대신 그 돈 15만 원-20만 원을 월급으로 받는 쪽을 선택한다. 회사는 사업주분의 보험료를 이렇게 아낀다. 불법이다.


이들은 퇴직금과 해고예고수당을 모른다.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권리도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다. 회사가 날 자르면 화가 나지만 그냥 퇴사하는 이유이다. 일 하다가 다쳐도 홀로 버틴다. 산재보험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단면을 보고 있자면 진짜 울화통이 터진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 싶다. 내 월급은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200이 안 된다. 상담활동가 월급이 너무 적어서 국비 도비 시비로 25만 원 정도 보전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4대 보험으로 18만 원 정도를 납부하고 있다. 이 돈이면,,, 월급이 210만 원 정도는 될 텐데!


위의 공장 사례는 너무 기가 차서 어떻게든 고발을 해볼까 싶었다. 물론 불가능해졌다. 당사자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저임금 시대라는 것은 너무 각박한 세상이다. 사람들은 생존에 각박하다. 일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이 전부인 세상은 많은 것을 빠았아간다. 시간에 각박해지고 서로에게 각박해진다. 승진에 퇴근에 업무에 빡빡해진다. 결혼은 생각할 여유도 없다. 출산은 사치, 우정이니 취미니 이런 것들도 다 남 얘기 같아. 나만 그런 걸까. 15년째 원룸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요즘따라 더 수수께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구나, 나도 그렇게 힘들게 살게 되겠구나.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치는 언제 열릴까? 다음 대통령은 이렇게 살아본 사람이면 좋겠다. 이번 대선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과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당신에겐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에겐 지금보다 더 잘 살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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