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데 행복해
이사를 했다. 매매가 아니고 전세라는 단어가 붙으니 우리 집은 아니겠지만 4년 만에 우리에게 처음으로 생긴 문, 방 같은 것들이 아직도 어색하다.
애인이랑 만나기 시작한 2019년 9월부터 내 자취방으로 끊임없이 애인을 유인했다. 유인? 유인이라는 말이 적절한가? 당시 애인은 셰어하우스에서 살다 보니 방 하나에 4명이 같이 살고 있었다. 애인이 좋아하는 초코우유와 헤어제품을 사놓았다. 여기서는 편하게 있길 바랐다.
처음 짐을 합쳤던 집은 서강대 앞의 우정마샹스. 내 자취방이었던 이곳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는 원룸이었다. 누군가는 화장실도 없는 원룸에서 어떻게 둘이 사냐고 놀라기도 하더라. 우리는 싸우지도 않고 알콩달콩 살았다. 저녁이 되면 경의선숲길을 산책하고 들어와선 샤워바구니를 각자 하나씩 들었다. 복도를 통과해서 애인은 남자 샤워실로 나는 여자 샤워실로 나눠서 들어가며 "이따 봐!" 인사를 나눴다.
두 번째 집은 강서구의 청년주택이었다. 당시 애인은 마곡으로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강서구 청년주택에 지원했고 당첨됐다. 두 집을 각각 계약하려고 보니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가족회의를 열어서 집 하나에서 같이 살아보기로 했다. 청년주택은 1인 1실이 원칙이라 애인은 전입신고 없이 짐만 가져오게 됐다.
2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 짐이 넘치더라. 책 한 권도 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침실이랑 컴퓨터를 분리하는 투룸을 소망했다.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을 알아봤다. 평생 월세로만 살아봐서 전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전세사기를 당한다는 건 뭔지, 사기를 당한다면 어떤 손해를 보게 되는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걱정이 되어 밤마다 유튜브로 공부했다. 매매가가 투명해야 했고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우리가 우선순위에 있을 수 있어야 했다.
하필 우리가 이사 가려는 동네는 최근 전세사기가 횡횡하여 지자체에서 지원센터까지 세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세대와 다가구는 포기하고 아파트로 눈을 돌렸다. 생각했던 예산보다 전세금이 확 올랐고 이렇게 무리해서 이사 가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모쪼록 안전하게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매주 주말마다 멀리 이사 갈 동네까지 가서 집을 알아봤다. 요동치는 매매가와 전세가 사이에서 전세가 상승에 이용되는 기분 같은 걸 계속 느껴야 했다. 집주인도, 부동산도, 이웃들까지도 모두 높은 금액에 계약하는 걸 원하는 상황에서 오백만 원, 천만 원이라도 낮춰보려는 우리 입장은 매 순간 얼마나 위축되던지.
그렇게 이사 왔다. 방이 3개가 있다. 화장실은 2개나 된다. 드레스룸에 베란다, 세탁실까지 있다. 요즘 집은 큰 집이 아니어도 이렇게 방을 많이 만드나 보다 싶은 생각을 하며 짐을 채운다.
세탁기, 건조기, 티브이, 냉장고를 샀다. 이것도 태어나 처음 하는 경험인가. 소파와 소파 테이블도 샀다. 네? 소파테이블이요? 제가요?
우리에게 결혼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애인의 부모님께 결혼을 전제로 같이 살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으니까 결혼하는 건 맞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이번에 이사 온 집이 신혼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우정마샹스에서 신혼을 시작했지롱. 결혼준비와 신혼여행준비, 이사준비까지 하는 실제 신혼부부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사만 해도 결정할 게 정말 너무 많더라. 돈도 많이 쓰게 되고.
방 3개의 용도를 정했다. 침대 방, 내 방, 애인 방.
내 방? 내 방이라니! 믿을 수 없는 존재, 나의 서재. 이 서재에서 난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가게 될까? 허리가 안 좋은 나를 위해 애인은 모션데스크를 사줬다. 사진엔 없지만 허리에 좋다는 고오급 사무의자도 하나 들였다. 이케아에서 복실복실한 러그도 하나 들였다.
침대방은 더 가관이다. 양심상 침대는 바꿀 수 없었으나, 암체어를 넣었다. 하하하
이렇게 과소비를 하면서 불안감은 한층 커졌다. 2년 뒤 전세가 끝났을 때 우리는 또 어떤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까? 다시 원룸을 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가구들 다 되팔게 되는 건 아닐까? 이 집에서 떠날 때는 집 사서 나가고 싶다. LH신혼희망타운 청약하게 해 주세요.
이사와 퇴사 시기가 겹쳐서 그런지 한층 더 외롭고 불안하다. 15년 원룸에서 살던 내 기준에선 이 집이 너무 크다. 애인이 출근하고 나면 커다란 집에 혼자 남아서 내가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내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내가 어떤 일에 제대로 도전하고 끈기 있게 이어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심지어 이삿날 시작된 월경과 감기까지 겹쳐서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마음이 쓸데없이 너무 앞서 가는 것 같아.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은 좌절이 닥쳐올까 봐 무섭고 싫었다. 하지만 이번 이사를 겪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하지 않은 죄절이 가능하다면, 계획하지 않은 발전도 가능하겠구나 같은.
내 인생에 애인을 들이고, 애인 인생에 내가 들어가면서 우리 인생의 복잡도가 한결 높아졌다. 가까운 어른께서 내 이사를 지켜보시며 둘이 사는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일 거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 쓰리룸 이사가 그 일어날 많은 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 혼자였다면 대출을 이렇게 쓸 수도 없었고, 애인 혼자였다면 이런 좋은 집에 살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 둘이 만나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
애인은 월경, 감기로 아픈 나를 간호하면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아파서 끙끙거리다가 거실에서 잠든 나를 발견하고 내 옆에 있겠다며 맨바닥에 드러눕는 애인 덕분에 자꾸만 웃음이 난다. 모르겠다. 이게 뭘까. 행복인가. 행복은 원래 불안한 건가. 내 행복의 그릇이 너무 작은 걸까. 이 정도 행복도 감당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