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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Jun 04. 2019

경계를 사수하라!

접촉하고 싶다면 동의를 구하세요

여자 12명, 남자 12명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성교육이 진행됐다!!!!
우와 여러분 소리 질러!!! 쩌렁쩌렁!!!!


요즘의 나를 변명해보자면 페미니즘을 공부한다기보다는 실천 중이다. (개념이 약하다는 소리) 그래서 오늘 강의가 너무 좋았다. 성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얼마나 말도 많고, 고민도 많은지 모른다. 이런 게 성폭력이라고 외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성폭력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거든.


경계(personal space)를 배웠다.

많은 경우, 내 양 팔을 바깥으로 쭈욱 뻗은 정도가 물리적 퍼스널 스페이스


우리는 모두 다른 경계를 갖고 있다. 이 경계에 내가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침범하면 불편함을 느낀다. 선생님의 표현 중에 '경계의 모양'이라는 단어가 와 닿았다. 어떤 경계는 세모 모양, 어떤 모양은 동그란 모양이라고. 경계의 모양이나 크기만 다른 게 아니라 그 경계에 대한 감각도 각자 다르단다. 어떤 이는 타인이 내 경계를 침범할 때에도 '아, 그렇구나' 하고 물 흐르듯 넘어가지만 다른 어떤 이는 '네가 감히 내 경계를 침범하다니 널 저주하겠어'라며 용서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존중해야 한다. 존중한다는 것은 침범하지 않는 것. 이것이 TV 드라마에서 자주 얘기하는 '지켜준다'는 것인가? 나도 누군갈 지켜주고 싶다. 누군가 나도 지켜주세요. 내가 여러분 지켜드릴게요!


동의 없이 내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 = 성폭력

성폭력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때에도 이 경계 개념을 들어 설명해주셨다. 타인의 경계(Persnal Space)를 동의 없이 침범한 경우에 성폭력이라고 부른다. 성폭력을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폭력, 위력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나의 시도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웠거든. 저의 퍼스널 스페이스 침범하지 마세요! 너무 명쾌해! 짜릿해!


성폭력
강간 / 성추행 / 성희롱
불법 촬영 /데이트 폭력


강간은 성기 강제 삽입을 말한다. 이건 모르는 사람 별로 없겠지? 오늘 강의에서는 성희롱의 개념이 신박했다. 나는 지금까지 성희롱에 '희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 오늘 배운 바, 성희롱이 법률용어란다. 직장 내 성추행을 일컫는 법률 용어. 다른 성폭력 개념과 근거법이 다르다고. 너무 신기하더라.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엉덩이가 예쁜데~'라고 말하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라 성추행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에겐 직장이 없으니 나는 당분간 성희롱할 일은 없겠다. 허허.


너의 경계에 들어가고 싶어.

똑똑똑, 문 열어도 돼요? 저 거기 들어가고 싶어요. 그 경계 안쪽이 궁금해요. 봐도 돼요? 그 경계 안쪽에 제가 들어가도 되나요?


상대방의 경계에 들어가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와 가까워지다 보면 그 사람의 경계 안쪽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경계에 들어가는 방법, 경계에 침범하지 않고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을 부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물어야 한다. 그냥 질문하는 것도 좋지만 이유를 함께 말하면 더 조심스러운 노크가 된다. 예를 들어 첫 데이트 상황에서 '집이 어디예요?'라고 묻는 것은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노출하기는 좀 그렇잖아. 이럴 때는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때는 중간지점이면 좋을 것 같은데, 집이 어디세요?'라고 이유를 붙이면 한결 조심스럽다.


동의는 맨날 구해야 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맨날 동의를 구하는 건 여러모로 힘들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은 모든 단계에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경계를 존중하는 방식이라면 질문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셨다. 여기서 말하는 '존중'은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을 따른 존중을 말한다. '내가 이 정도로 했으면 충분하지.' 맘대로 판단하는 것은 땡! 가짜 존중이다. 상대방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하고 있군.' 느껴져야 진짜 존중인 것이다. 동의를 구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소개해주셨다.


동의의 기준을 스스로에게 두면 안되듯 법률에 두어서도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성범죄 아니겠지? 법으로 괜찮은데 자기가 어쩔 거야~' 이런 배째라식은 곤란하다. 법은 정말 최소한의 규칙일 뿐이다. 내가 범죄자가 될까 봐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게 말이 되니? 동의를 구해야 하는 대상은 항상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이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했다면 다행스럽게도 법률의 동의는 구하지 않아도 된다.


동의 구하기 / 대답 듣기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대답까지 들어야 완성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동의를 구하는 듯한 모양새는 자주 연출된다더라. 남자 주인공이 동의를 구하는 말을 건넨 뒤, 여자 주인공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키스해버리는 거지.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면, 당연하게도 답이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잠깐 기다리기만 해서 동의가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답을 들어야 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그렇게 많다고. '난 동의를 구했으니까 됐어'라는 합리화 방식은 '땡'이올시다. 성교육 강사님은 초등학교에서 강연하실 때면 동의를 구하는 단계를 나눠서 강의를 하신단다.


1단계 동의 구하기 / 2단계 대답 듣기


성별 고정관념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해 주셨다. 시간이 부족했거든 ㅠㅠ 성별에 따라 정해진 행동양식, 말투, 감정, 역할, 직업 등이 있다는 믿음이다. 여자가 남자한테 먼저 들이대면 안 된다, 남자는 직진이지, 남자는~ 여자는~ 이런 말들이 모두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딘가 사회에 속해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은 특정 성별로 지정되어 성별 역할을 수행하라는 관념과 압박을 주입받기 때문이다. 없애려고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모든 여자가 운동을 싫어하지 않고, 모든 남자가 운동을 좋아하지 않듯. 하지만 학교 운동장 면적의 대부분은 남자들이 사용하지. 그리고 요즘은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이런 것들이다. 성별 고정관념을 해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은.


으... 불편해

내 불편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불편감을 인지하는 것도 내 불편감을 얼마나 인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나를 더 존중하기 위해 내가 느끼는 불편감에 집중해보면 좋더라.


불편감을 인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타인의 불편감을 수용하는 것이다. 타인의 불편감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냥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특정 상황에서 불편감을 느낀다고 말했음에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 불편감을 무시할 때, 얼마나 속상하게요? 그 사람의 불편감을 존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지도.


누군가 자신의 불편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예전에 무한도전에 나온 것처럼 하면 좋겠다. '아~ 그랬구나, 불편했구나.' 물론 무한도전처럼 여기서만 끝나면 개그가 되어버린다. '아~ 그런 점이 불편했구나' 어떤 점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지 정확히 캐치하고, '그럼 이건 이렇게 바꾸자!'라고 변화를 제안하자. 그게 진짜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해. 다른 성별의 불편감에 대해서는 특히 더 노력해보자. 우리나라가 워낙에 여남이 유별해야 하는 사회였잖아.

너는 나를 듣고,
나는 너를 듣고,
그럼 우리 모두 햄벅♡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퀴어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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