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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3. 2019

[도둑처럼 기자가 되었습니다(1)] 무죄입니다

도둑처럼 기자가 되었다. 물건을 훔쳤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 고시'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논술과 작문을 포함한 언론사 입사 시험을 그렇게 부르곤 한다.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나는 장원급제 없이 기자가 됐다. 다시 말해 쉽게 얻은 자리다.


처음엔 '다른' 기자가 되고 싶었다. "언론 바닥이 원래 그렇다"는 선배들이 싫었다. 참사나 재해 앞에서 "이번 아이템 좋다", "기자는 피가 차가운 사람들이다" 따위의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게 미웠다. 정확한 진실 규명 없이 검찰발 기사를 쏟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탐사보도는 다 맞는 줄 알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매번 진실을 들춰낸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었다. 오만했다. 사건들은 시나리오처럼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역시 쉽게 나뉘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나도 선배들과 다름없었다. 지난달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딸을 구하고자 죽도를 내려친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게 아쉬웠다. 정당방위가 아니었으면 특수상해로 징역을 받을 수 있던 사건이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공분을 샀을 테고, 더 많이 읽힐 것 같았다. 기사 초안도 그렇게 잡아둔 때였다. 이날 법정에는 기자가 나뿐이었다. 단독이었다.


현장을 나오자 부끄러웠다. 다음날 편집장은 "콘텐츠 제작자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위로가 됐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걸까. 중요한 걸 잊은 채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아버지는 딸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저녁으로는 혼자 국밥을 드셨다.


언론 무대에 도둑처럼 쉽게 들어왔다. 고개가 무겁다. '기레기가 되지 않겠다'고 할 자신이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현직 기자들을 쉽게 욕했던 게 부끄럽다. 기본적인 윤리조차 외면하고 있는 언론에 면죄부를 주는 건 아니다. 다만 각자가 치열하게 뛰고 있었다. 생각보다 문법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나도 이 바닥을 사랑한다. 사건을 분석하고, 정리해서 알리는 게 보람차다. 그러나 동시에 무죄 선고 때처럼 답을 모르겠을 순간이 찾아온다. '시야가 좁은 건 아닐까, 맥락을 놓친 건 아닐까, 중요한 걸 잊은 건 아닐까'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시달리다 보면 답을 찾게 될까. 선배들은 답을 찾았을까. 정답일까.


모르는 게 투성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다. 기사를 쓸 때마다 매번 겁내고, 무서워 할 수는 있다. 도둑처럼 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들킬까 봐 늘 겁이 난다. 죄짓고 맘 편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소심한 성격 덕분이 크다.


다짐의 시작이다. 이어서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중요한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죽도 기사에는 '다행이다'는 댓글이 여러 차례 달렸다. 무죄가 나와서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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