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린 단상

1호선, 노인 곁에 머문 시간

by 유연

그래, 딱 1시간이다. 매주 목요일, 지하철에서 1시간만 버티면 바람 기자단 기사 학교에 갈 수 있다. 1호선 동묘역부터 가산디지털단지역까지는 사람이 끔찍이 많다. 1974년 수도 서울과 ‘영광된 조국’을 위해 완공된 1호선에서 나는 피로를 감출 수 없다. 겨우 한 칸의 전동차에 회의감이 가득이다. 퇴근 시간까지 겹치면 나의 인간 혐오증을 상기시킨다. 끈적이는 접촉과 불필요한 소란, 낯선 이와 마주 보게 만들어진 좌석. 아, 싫다.


18:29, 어김없이 연착된 전동차가 서울역을 지나칠 때 노인이 내 오른편 허벅지를 스치며 앉는다. 무궁화가 새겨진 모자가 눈에 띈다. 국가유공자인지 참전 용사인지 태극기 집회를 다녀왔는지는 모르겠다. 모두 해당할 지도. 몹시 굽은 등 탓에 앉아있어도 편해 보이지 않는다. 지팡이를 붙잡고 의자 끝에 걸려있는 모습이 마치 생의 이면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듯하다.


아, 짙게 밴 누린내가 난다. 급한 마음에 누군가 전봇대에 휘갈긴 듯한 날 것이 아니다. 사람 한 점에 겹겹이 쌓인 냄새다. 완공된 지 40년이 지난 1호선에서, 승객은 영광된 조국을 잊었는데 노인은 그러지 못했나 보다. 긴 세월과 함께 사무친 냄새가 그윽한 주름과 어울린다. 반대편의 승객은 일찍이 코를 막으며 자리를 뜬다. 바로 옆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글 쓸 궁리나 해본다.


나는 노인의 세대를 모른다. 큰 관심이 없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코앞에서 냄새를 맡고 있으니 미약하게 알고 있는 것이나마 거슬러 올라가 본다. 어떤 일을 겪었을까. 급한 대로 민주항쟁과 유신, 한국전쟁이 떠오른다. 광복과 일제강점기까지도 갈 수 있겠다. 지금 노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아슬한 마음이 든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는 30대의 노인, 김첨지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33세, 인력거꾼은 28세였다고 하니 놀랄 일은 아니다. 천근만근 인력거를 이끌고 서울의 온 언덕을 다녔을 테니 뼈가 삭았겠다. 낮에는 역사 앞, 밤에는 기생집 앞. 기필코 자기 땅을 마련하여 품일꾼을 벗어나겠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잡고 살았을 테지. 먹먹해진 마음으로 냄새가 밴 이름 모를 노인을 본다. 뼈가 삭을 때까지 잊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가 있을까. 내 코는 여전히 누린내에 적응하지 못한다.


사실 나라고 뭐 크게 다른 게 있나. 아침에 씻고 나오지만, 벅찬 하루를 감당하느라 저녁에는 항상 땀 냄새가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냄새가 배지 못하게 옷을 갈아입고, 향수와 섬유유연제를 뿌릴 뿐이다. 내가 가릴 수 없는 부분도 있을 테다. 노인은 살아온 나이테만큼 깊게 냄새가 배어 나보다 조금 냄새가 진할 뿐이다. 그래도 누린내는 난다.


이쯤 되니 발악한다. 듣고 있던 잔잔한 재즈에서 ABBA의 'Dancing Queen'으로 노래를 바꾼다. 맘마미아의 OST인데 생동감 있는 리듬이 좋다. 곤란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춤을 추며 모두가 웃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다. 모두 하나 되어 대동 놀이를 벌이는 장면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므로 매력적이다. 연극의 미학이다. 지금 1호선에서 모두가 웃으며 노인을 얼싸안고 춤을 추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주제곡은 'Dancing Queen'보다는 노인이 주인공인 'Fernando'가 좋겠다.


한계다. 결국, 재채기가 나온 척하며 살짝 고개를 돌린다. 코가 가려운 듯, 알레르기가 있는 듯. 송구스러우니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소매에 코를 묻는다. 착한 척을 하려 하나, 부끄럽게도 철저히 위선적이진 못하다. 그래도, 온갖 눈살을 찌푸리며, 눈치를 주며 이미 자리를 떠나버린 사람보다는 노인 곁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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