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할게"
눈썹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눈에게 내뱉었다.
눈썹은 눈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연히 살아남은 눈은 항상 타인의 일을 자신이 겪은 듯이 가슴 아파했다. 밤길을 걸을 때면 별을 보지 못하는 대신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택시를 탈 때면 냉랭한 창가에 고달픈 얼굴을 누이면서도 잠들까 무서워 치열하게 버텼다. 태양을 볼 때면 따사로운 봄볕이 자신에겐 미치지 못할 거라 서글퍼했다. 한 칸의 화장실에서조차 햇볕은 없었고 어두컴컴한 수많은 구멍 속, 어딘가에서 플래시는 터졌다.
눈썹은 눈이 왜 그토록 예민한지 알 수 없었다. 눈썹은 눈이 화내서 힘든 게 싫었다. 밤길을 걸을 때면 별이 너무 아련해 울었으면 했다. 택시를 탈 때면 기사와 함께 사람 사는 냄새를 맡길 바랐다. 빛나는 태양을 볼 때면 꿈을 떠올리며 벅차기를 바랐다. 왜 눈은 항상 분노한 채 고함지르고, 소리치는지 눈썹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썹은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했다. 무서우면 눈을 감아버리고 외면하라고 했다. 눈썹은 눈이 무엇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답답했다. 얼마나 무겁디무거운 눈꺼풀을 눈이 버틸 수밖에 없는지 몰랐다. 무겁다면서 왜 내려놓고 평온하게 잠들지 못하는지. 두 눈을 시퍼렇게 치켜뜰 수밖에 없는 일상은 눈에게만 더 아니 잔인한 것인지 눈썹은 몰랐다. 눈썹은 눈이 내는 드높은 용기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도 하지 않았다.
눈썹은 자신이 잘하겠다고 했다. 땀이 흐르면 자신이 닦아줄 테니 있는 힘껏 뛰어보라고 했다. 참으로 맑고 걱정 없는 미소 앞에 눈은 희미한 씁쓸함만 건넬 뿐이었다. 눈은 자신의 일부라 생각했던 눈썹이 남처럼 느껴졌다. 눈은 보이지 않는 천장에 가로막혀 뛰지 못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눈썹이 들을 생각도 하지 않던 까닭에, 눈은 홀로 눈물 흘리며 지독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눈썹도 나름대로 최선은 다했다. 그러나, 눈이 흘리는 눈물은 언제나 아래로 흘렀다. 눈의 위에서 군림했던 눈썹은 땀은 닦아줄 수 있어도, 눈물을 닦을 수는 없었다. 항상 눈의 위에 존재했던 눈썹은 눈이 틀렸다고 했다. 눈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고, 그건 곧 눈썹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눈썹은 손톱만한 얄팍한 손수건 외엔 가진 게 없었다. 눈의 눈물을 닦아주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천을 덧대어 손수건을 꿰매볼 생각조차 못 했다. 바느질은 눈썹이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눈썹은 눈이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보려고 하지 않았다. 칼바람 부는 세상에서 눈썹은 홀로 머물렀다. 따갑고 아팠던 건 눈썹이 아닌 눈이었는데, 눈썹은 온일한 세계에서 잔인하게도 홀로 머물렀다. 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허무는 대신 눈을 비참한 곳에 내버려 뒀다. 손잡고 옆에 있는 대신, 앞에서 자신만 따라오라며 오만하게 이끌었다. 혹은 뒤에서 뒷짐 지고 방관하려고만 했다. 눈썹은 비겁하게도 한 발 뒤로 물러남으로써 바람애 아플 일 없는 자신의 안온한 세계를 지켰다. 세상과 맞서는 일은 피곤할 뿐, 하지 않는 게 편했다.
눈은 눈썹의 평범한 삶이 부러웠다. 눈썹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통곡할 수밖에 없는지.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일상에서 매일 무엇을 보고 듣는지. 하루를 버텨낸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세상이 눈을 송두리째 뽑으려 할 때 왜 눈을 질끈 감을 수 없는지. 무서워도 왜 눈을 치켜뜨고 맞서고 있는지.
눈은 단지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은 이미 멍들었던 눈두덩이가 있었다. 타인에게, 애인에게 수없이 맞아낸 끝에 생겨난 상처였다. 상처를 쓰다듬던 손으로, 이해를 포기한 채 눈썹을 지웠다. 눈썹이 없으니 어색했다. 처음 단발머리를 했을 때처럼 자신 혼자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듯 했지만, 점차 적응했다. 눈썹이 없으니 예쁘진 않았지만 누가 규정한 예쁨인지 눈은 알고 있었다. 어색해도 시간이 흐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제야 눈은 눈썹이 아니라 자신의 검은 눈동자로 표정을 나타내는 법을 배웠다. 눈썹을 지워도 눈의 어스름한 눈동자는 황혼처럼 더없이 빛났다. 태양도, 달도 없는 곳이었지만 북두칠성처럼 홀로 뒤따라오는 이의 길을 비췄다.
단지 사랑하는 일을 바랐건만 눈썹은 눈을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