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해방감이 들기보다는 주로 부끄럽다. 편견으로 가득한 보편에서 내려왔다.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여 형성된 새로운 인식은 나의 성찰을 이끌었다. 안일했던 세계가 부서짐과 함께 홀로 그 안에 머물렀던 내 모습이 보였다. 남성에게 뒤따르는 편리를 숨 쉬듯 당연한 권리로 착각했다. 방관자이자, 곧 가해자의 위치에서 침묵했던 시기가 몹시 길었다. 반성은 그에 따른 마땅한 일이 되지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여전히 내 치부를 마주 보는 게 부끄럽다. 지금처럼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니 끊임없이 찔린다.
페미니즘은 인류 절반이 겪고 있는 차별적 사회구조의 문제를 다루지만, 다름 아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의 구조를 만드는 데 내가 얼마나 이바지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늦게나마 변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나, 가끔은 내가 주제넘은 짓을 하는 듯싶다. 그러다 내 글의 쓰임을 고민한다. 여성이 굳센 용기와 연대로 외쳐왔던 이야기를 내가 이제야 이해한다고 해봤자, 딱 거기까지다. 결국 주체로 확장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한다. 남성의 부끄러움과 성찰, 변화를 이끄는 것이 보잘 것 없는 내 글의 쓰임 아닐까.
과거의 나는 남성 사이의 유대를 더 중요시하지는 않았던가. 남성 집단의 폐쇄적인 문화에 속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나는 왜 소위 '남성적'이지 못한가에 대한 회의감은 어릴 때부터 시작했다. 로봇이 아니라 곰 인형을, 술집보다는 카페를 좋아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 편하게 남성 집단과 관계를 끊는 것이 나의 최선은 아니었을 텐데. 그 집단은 여전할 텐데 나만 벗어난다고 될 일인가. 그들에 의해 여전히 객체로서 소비되고 있을 여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돌아본다. 내가 떳떳하고 잘났다는 게 아니다. 내가 부끄러운 만큼, 그들도 언젠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죄책감을 바탕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불평등한 사회구조 앞에서 남녀 간 사람으로서 동등한 관계의 성립은 가능할까. 트위터에서 떠도는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장문의 글을 읽었다. 남성이 여성을 사랑했더라면 지금의 가부장제는 진즉에 남성이 부쉈으리라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동등한 사람으로서의 유대가 아니라 여성성을 탐미하고 자랑했던 내 이야기였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고, 상대방의 가치는 나를 거쳐 정했던 내 이야기였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행동만 인정받고 싶어 했다. 반대의 경우엔 서러움마저 느꼈던 내 이야기였다. 설명하기 힘든 연애 감정선에 대한 고민은 가벼웠다. 어쩌면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나는 지금보다 더 달라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경각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나의 권력을 돌아본다. 성별에 따라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차이가 큰 탓에 나는 좀 더 자유롭고, 브런치에 글을 쓸 만하고, 밖에서 목소리 내기 쉽다. 결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다. 글을 쓸 때 남성이라서 여성에게 죄스러운 순간이 많지만, 페미니즘의 흐름에 도움이 되고 싶다. 대신 쉽게 동참하는 만큼 여성이 목숨을 걸고 알려준 덕분이 전부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은, 그들에 비하면 사실 보잘것없다. 그래도 가만히 있지는 않으려 한다. 내 글이 남성을 설득하고 찔리게 했으면 한다.
사회에 대한 나와 분노를 감히 여성의 분노와 같은 무게라고 주장할 수 없다.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나의 자조와 한탄은 안 바뀌어도 상관없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내 이야기가 된다면 자연스러운 반응은 자조가 아니라 분노와 막막함이다. 언젠가 여성만큼 분노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나로서는 한 번 욕하고 끝나는 일이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 여성 앞에서 같이 울어도 될까. 함께 울만 한 자격은 되는가. 아직은 위로밖에, 조금이라도 더 넓은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불평등한 제도와 구조는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그와 별개로 대화를 통해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 서로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성찰해야겠다. 함께 고민하되 무게감이 따르는 중요한 결정은 상대방이 하는 게 맞는 듯하다. 가끔 투덜대더라도, 내가 그 결정의 무게와 빛을 동경한 나머지 언제까지나 따라가고 싶다.
더 묻고, 더 들으려고 한다. 상대방이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그건 완전히 옳다. 상대방이 느낀 불편한 감정과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 상대방이 옳다. 이유나 근거는 내가 찾아내고 성찰해서 나를 바꾸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위치가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서 내가 상대방의 옆에 있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는 듯하다. 사소한 바를 중요하게 기억하고, 말해주면 고치고, 가끔 실수하더라도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특별하거나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잘못을 깨달았고, 그로 인해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다. 성찰을 통해 정상이 되고자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부 비정상일 때가 많으니 간혹 이상하다 싶을 때도 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보편이 정상을 뜻하진 않는다. ‘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고 싶다.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권력 구조상 불평등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우리를, 사회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