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의 중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정의로운 때는 바로 지금임을 되새긴다. 고작 이 정도인가 한심스러운 순간도 많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잃어가지 않을까 싶다. '타협'과 '융통성',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게 될까 봐 무섭다. 가진 것과 책임의 무게가 커질수록 내가 붙잡고 있는 보잘것없는 고집과 신념이 가벼워지지는 않을까.
조선일보 겨울 인턴 기자직에 떨어졌다. 자소서의 첫 문단에 페미니즘과 인권 운동에 관심이 많다고 썼다. 여러 군데 글도 쓰고 있다고 했다. 면접에서 받은 첫 개인 질문은 역시 페미니즘이었다. 예상했던 터라, 답변은 꽤 잘했던 듯하다. 남성만 누려왔던 기회의 평등을 여성과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함께 누린다면 더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앨라이로서 남성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글을 쓴다고 했다. 남성이 무슨 성찰이냐고 물어보던 면접관의 눈빛이 기억난다. 광화문 빌딩숲을 지나 덕수궁 돌담길로 걸어 나섰다. 후련하기보다 답답했다.
콘텐츠 기획안을 제작해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허난설헌의 시점에서 한국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비판하는 1인칭 형태의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한'으로 얼룩진 허난설헌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의식을 알리고 싶었다. 한시 작품을 통해서 그녀의 의식을 밝히고 지금 한국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면 의의가 크리라 예상했다. 발표할 때 대다수가 보내던 날선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끝나자마자 얼른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발화 의무와 발화 권력 사이에서 고민한다. 똑같이 페미니즘을 얘기해도 남성이기 때문에 불이익과 협박이 없다. 기껏해야 불편한 일이 생기는 정도다. 사회적 시선 역시 일정 부분, 혹은 상당 부분 자유롭다. 타자화되지 않는 만큼 더 불편해지려고 하나 그럼에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으니 부끄럽다. 수만 명의 여성은 그간 어떻게 목 놓아 외치고 있던 건지,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수록 존경스럽다. 되돌아갈 수 없는 여성의 분노에 주체가 되어 나를 비춰볼 수 없으니 그만큼 깊이 고민한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길게, 또 짙게 성찰하지만 부족함 외엔 아직 돌아온 게 없다.
성장은 보통 고통을 동반한다.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없는 성찰과 정서적 개방, 성숙을 꿈꾼다. 나의 좁은 경험만으로는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없으리라 확신한다. <일상의 에로스>에서 수전 그리핀이 전해준 통찰이 와 닿는다. 내가 나의 본성을 인지하고 유지할 수 있는 건 오직 연대를 통해서 가능하리라.
'연대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의 본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관계가 있다. 차갑고 불편한 세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에게 주었던 따뜻한 말들을 곱씹는 것뿐임을 깨닫고 있다. 서로의 성장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날개를 잠시 접고 기대도 안심이다. 홀로 걸으니 힘겨웠는데 연대의 원 안에서 함께 춤추니 할만하다. 세상에서 불편함을 느낄수록, 적어도 그 사람만은 나를 편하게 대해주니 감사하다. 관계에서 결합된 자기애와 생명력을 믿는다.
정서적으로 성장해 더욱 불편해지고 싶다. 남성에게 불편함을 전해주고, 스스로 견뎌야겠다. 밤거리를 돌려받으려는, 일상에서 자유를 지켜내려는 여성의 삶을 존경한다. 강해지기보다 단단해져야겠다. 홀로 악착같이 버티기보다 힘들 땐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고, 듣고 싶다.
누구보다 남성이 가부장적 사고에 도전하고 바꾸려 할 때 지배 대신 연대가 실현되리라 믿는다. 정말 멋지고 놀라운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화성에서 온 남자가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남성이 늘어나길 바란다. 남성의 반성과 각성을 통해서 가부장제라는 고요한 감옥을 부수길 기대한다. 남성으로서 누려온 혜택과 편의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때 여성의 분노와 슬픔을 알 수 있다. 공감은 그냥 하면 좋은 게 아니라, 하지 못했을 때 큰 폭력이 될 수 있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에게서 나를 비춰볼 수 있을 때 실현된다.
기나긴 여정은 이제 겨우 시작했다. 이십 대 너머에도 내가 나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뤄야 할 것을 생각하면 갈 길을 잃는다. 이루어 놓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함께가 필요하다. 그럴 수 있도록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고자 한다. 최선을 다하되, 스스로 보다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 어쩌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연대를 이어가야겠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나일 수 있었던 건, 그럴 수 있었던 건 정말 내가 잘한 게 하나도 아니었다고 언젠가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