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옛사람들이 떠오른다. 눈 앞의 나직한 시간은 서늘한 새벽 앞에서 밀려나곤 한다. 옛사람들도 홀로 깬 새벽이 외로웠을 테니 그들을 그린다. 허난설헌은 초당에서 새벽마다 시를 지으며 여성의 불우한 처지를 외쳤다. 같은 새벽, 독립운동가 박문홍은 태극기 300개를 제작하여 배포한 뒤 일경에 체포됐다. 같은 새벽, 전남일보 사진부장 신복진은 5월 광주의 진실을 담은 사진을 항아리에 묻었다.
옛사람들은 새벽을 보며 시를 지었고 글을 지었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도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그리워했다. 푸른 산과 봄비를 사랑했고 나고자란 초목과 밤하늘, 골목길을 사랑했다. 억압받는 이 없이 모든 계층의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꿈을 꾸었다.
옛사람들이 어두운 새벽마다 꾸었을 꿈을 안타깝게도 우리가 이어서 꾸고 있다. 누구도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부끄럽게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등 젠더 폭력은 피해자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게 만든다. 폭력 자체도 문제지만, 사회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순수'를 입증하라고 끊임없이 검열하며 침묵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6월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체 범죄 발생건수의 0.39%라지만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해일이 일고 있는데도 조개는 주워야 하기 때문이다. 삶이 산산조각 난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고, 어딘가에 자신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음란물 유통 사이트 등 해외 불법 사이트 895 곳의 접속을 봉쇄했다. 보안접속과 우회 접속을 막기 위해서 SNI 기술을 이용했다. SNI 기술을 놓고 서울역 광장 앞에서 남성 100여 명이 모여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터넷 검열을 하지 말라며 자신들의 즐길 권리를 내세웠다. 어차피 우회할 수 있다고 하며 자유를 주장했다.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자처한 유튜버는 같은 불법이라면 성폭행이 형벌 대비 만족감이 가장 낫겠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 여성과 독립운동가, 민주열사의 고통도 현재인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즐길 권리만이 현재의 전부다. 고 황현산 선생의 말 대로다. 사람이 지닌 공감의 폭은 각자가 인식하는 현재의 두께에 따라 갸름되는 듯하다. 여성을 소비재로 보는 100여 명 사람들의 현재는 얇디얇다. 그들의 새벽은 모니터 앞에서 타인의 슬픔을 외면한 채 자위하며 찾아오는 듯하다. 그들의 자유는 옛사람들이 애써 만들어온 법을 지키지 않을 자유를 뜻한다. 그들의 권리는 산 사람을 짓밟고 조롱할 때만 존재한다.
두께가 얇디얇은 공동체를 살아가고 있음이 명확해질 때면 새벽을 본다. 허난설헌이 봤던 성평등한 사회를, 박문홍이 봤던 대한민국의 독립을, 신복진이 봤던 민주주의를 그린다. 그들이 새벽을 보며 꿈꿨을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염원을 이어받는다. 옛사람들이 새벽에 꾼 꿈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침을 덧없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