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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6. 2022

사전 투표를 하다가 청소년 참여를 생각했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 Wokandapix, 출처 Pixabay

지난 금요일 난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일에 직원들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발열 체크와 손소독을 동시에 한 이후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 건네받은 비닐장갑을 오른쪽 손에 착용하고 긴 줄에 나도 한자리 차지했다. 내가 방문했던 장소의 투표소는 행정복지센터 4층이었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혼잡할 정도로 줄이 길었다. 하루에 오미크론 확진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는 요즘이지만 투표를 위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것마저 잊게 한 것인지 거리 두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손에 끼워진 비닐장갑과 함께 괜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길게 늘어선 대기줄에 놀라면서 또 한편으로 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에 진심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다. 함께 갔던 직원들과 이 상황이 신기해서 몇 마디 주고받긴 했지만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인해 그것도 오래 유지하지 않은 체 오매불망 내 순서를 기다렸다. 


대기줄에 약 15분 정도 서서 기다리고 나서야 내 차례가 돌아왔다. 신분증을 선거안내요원에게 전달하며 신분 확인을 했고 서명을 마친 이후 내게 할당된 단 하나의 투표용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문구에 하얀색 천으로 둘러싸인 기표소 안으로 들어가 14명의 후보 이름을 바라봤다. 내 한 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소중하게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중 한 분의 이름 옆에 기표를 하고 내용이 보이지 않게 반으로 접은 뒤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참된 리더가 선출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진심을 전하는 순간이었다. 


투표하기 전날 밤 이제 12살과 10살이 된 우리 집 아이들이 대통령선거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정당이 무엇이고 단일화가 무엇인지, 대통령은 어떻게 뽑고 기호는 어떻게 매겨지게 된 것인지 등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조금 어려운 단어는 반복적이고 쉬운 용어를 사용하며 알렸고 깊이가 필요한 단어는 역사적 사례를 알려주기도 했다.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기특했고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청소년지도사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두 명의 초등학생 아이들처럼 아마도 우리 청소년들도 선거에 대한 궁금증이 많지 않을까? 선거와 정치, 민주주의가 맞물려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 앞에 우리는 그들의 호기심을 정확하게 잘 채워주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호기심을 우리는 모른척하고 있는 건 어닐까? 


몇 주전 나는 어느 정당에서 청년특보 역할을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청소년 한 명과 대화 나누었다. 그 청소년은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아주 명확하게 들어냈는데 정치적인 입장 차이의 유무와 상관없이 너무 좋은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 대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가 청소년을 피교육자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니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불과 10년 전쯤만 해도 청소년이 정당활동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청소년지도사들마저도 우려 섞인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청소년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원한다면 정당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한심했던 순간이다.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모든 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되면 저절로 성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엔 내가 모르던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연애, 성에 대해 한순간에 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놈의 대학만 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다. 나 원 참...  


그리고 '어린놈이 뭘 알아'라는 소리는 학창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을 향했던 어른들의 단골 멘트였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너희들은 알 필요 없으니 어른들의 세계에는 얼씬 거리지도 말라는 이야기는 그때도 지금도 참 화가 난다. 어리다는 사실이 곧 어리숙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논쟁하는 과정인데 나이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상황은 늘 어이가 없다.


시간이 변화하면서 조금씩 청소년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보인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 과도기 덕분에 벌어진 진통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앞서 말했던 사례처럼 청소년이 정치활동에 참여하고 선거권이 하향되기도 하면서 청소년을 시민으로 맞이하려 노력하곤 있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실질적 참여보다 명목상 참여가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린 더 큰 의지를 들여서라도 청소년의 참여를 기특하다고 여기지 말고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청소년헌장의 첫 구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 갈 권리를 가진다.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여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


자신의 삶을 살아갈 청소년에게 우리는 그들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는가? 또 삶의 주체로 인정하고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는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청소년을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 공동체의 동반자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늘여 섰던 줄에서 어르신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언젠가는 청소년의 모습도 그 줄에서 함께 자주 만나길 소망한다. 우리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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