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이야기 1일차
2022.02.23(수)
노트북 하나, 책 한 권,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텀블러 두 개와 과자 한 봉지가 지금 내 앞에 놓여있다. 창문 밖으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고 전기장판의 온도가 올라가 있지만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진다. 한숨 깊게 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라서 아까보단 나아졌지만 머릿속은 바이킹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곳은 분명 나의 집이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가족들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방문은 굳게 닫쳤고 혼자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배정되었으며 아내는 딸아이 방을 정리해서 나만의 임시 거쳐를 만들어줬다. 그렇다. 나는 지금 자가격리 중이다.
오늘 아침 기상 시간, 몸이 무겁다는 것을 인지했다. 요 며칠 늦게 잠에 들어 피로감이 있다는 것을 배제한다 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발열 증상은 없었지만 머릿속은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출근 여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 해야 할 일과 내일 해야 할 일, 이번 주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는 이 상황 속에서 출근을 미룰 순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느릿느릿하게 출근 준비를 마쳤다.
일터로 향하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코로나 자가 키트를 찾아 나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구매해놓는 건데..라는 생각도 함께 하며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런; 검사 키트는 있는데 아직 판매 준비가 안되었단다. 편의점 사장님께 억지를 부릴 순 없어 다른 편의점을 찾았다. (그 많던 약국과 편의점이 왜 하필 오늘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편의점은 안 보이고 출근시간은 다가오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일단 출근 도장을 찍었다.
출근 이후 이대로 정상근무는 힘들다고 판단해야 할 일 중에 다른 분들께 요청해야 할 사항들을 빠르게 인계하고 나의 건강 상태를 기관 내 선생님들과 재단 사무국에 알렸다. 병가 처리가 가능하다는 회신을 듣고 그 길로 코로나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한 보건소로 향했다. 그때 시간은 9시 30분.
울리는 머리통, 발끝부터 느껴지는 한기에 갑자기 허기까지 몰려왔다. 어제 점심을 마지막으로 밥다운 밥을 먹지 못했는데 몸이 허하니 뱃속부터 야단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지금은 뭘 먹을 때가 아니다. 아우성치는 뱃속의 요동을 모른 채하고 서둘러 보건소 인근에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검사대기인원이 어마 무시했다. 보건소가 아니라 유명 연예인 콘서트 입장을 위한 사람들의 행렬 같아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 옆으로는 'PCR 검사 대기 - 여기서부터 2시간'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나는 지금 PCR 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검사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끝나지 않은 대기 인원수를 보면서 코로나 확진자 추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나도 이 줄에 서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웠고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아 걷는 동안 답답했다.
신속 항원 검사소를 발견했을 때 이날 처음으로 다행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 2시간 이상 대기해야만 하는 PCR 검사에 비해 신속항원검사는 말 그대로 신속하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대기 인원수였기 때문이다. 스무 명 정도가 서있는 그 대기줄에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서 있었다. 하얀색 몽골텐트에 파란색 현수막을 보면서 코로나 시국이 오기 전 운영했던 청소년 축제 생각에 잠시 잠겨있을 때쯤 내 차례가 다가왔다.
개인 정보 작성란에 정자로 글을 쓰고 또 다른 줄에 섰다.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아이들 두 명이 검사소 앞에서 무서워 울고 있었고 부모는 힘겨워했고 그것을 보는 나는 이 순간이 지옥같이 느껴졌다. 힘들었다. 어른들도 힘든 이 검사를 아이들까지 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고 우리 집 아이들도 생각났다.
검사 전 손 소독 안내를 확인하고 손 소독을 했다. 그다음 코로나19 신속항원 자가검사 키트 사용방법을 읽어 내려갔다. PCR 검사와 달리 신속항원검사는 자가검사라는 특이점이 있기에 이 방법이 중요한 포인트인 듯했다. 자세히 읽어보려 하는데 추워서 웅크린 롱 패딩 속 나의 모습과 마스크 속 나의 입김이 안경을 통해 발현되고 있어서 정신없이 그 순간을 떠나보냈다. 제대로 읽지 못한 자가검사 방법이지만 그래도 뭐 별일 없겠지 하고 자가검사 부스에 들어갔다.
전신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내게 기다란 면봉을 건네줬다. 나는 건네받은 면봉으로 양쪽 콧속을 깊게 넣고 검체를 채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헛기침을 내뱉고 면봉을 의료진이 안내한 액체에 흔들어 댔다. 그 후 의료진은 검사 테스트기 하단에 몇 방울의 물방울을 올려놓고 15분 뒤에 검사 결과를 안내받으라고 설명한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씨에 대기실이라고 쓰여있는, 바람에 나부끼는 천막 속에 들어가 15분을 기다렸다. 다리는 떨려왔고 두려움은 엄습해오고 있었다. 혹시나 양성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당장의 업무는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에 있는 가족 생각도 흐릿하게 더해졌다. 그러는 사이 15분이 지났다. 테스트기는 양성을 가리키는 두 줄이 아닌 한 줄이 나타났다. 음성이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음성 확인서 서류를 기분 좋게 가지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때 시간은 10시 10분. 몸이 아픈 건 여전했지만 어쩐지 아까보다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화에서 계속됩니다.
_by 레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