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이야기 2일차
2022.02.24(목)
평소보다 늦은 아침, 눈을 떴다. 아침마다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척하면서 외면했던 결과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커튼을 열었더니 따뜻한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햇살이 비치는 길을 따라가니 아내가 어젯밤과 새벽에 준비해 둔 구호물품(물, 라면, 간식, 반찬과 햇반 등)이 한가득 차려있는 것이 보인다. 아내의 마음이 내게 닿아 감사가 절로 나온다. 아내에게 안부 연락을 하고 문밖에 있는 아이들과도 통화로 인사했다. 같은 지붕 안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모습이 매우 생경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연락하는 게 최선인듯하다.
아내가 준비해둔 물품 중에 비타민 음료가 보인다. 하나를 집어 들고 마셨는데 다행히 후각과 미각 모두 별일 없이 작동한다. 그러면서 몸 상태를 확인해 보니 어제보다 머리는 맑은데 코막힘과 목이 아픈 증상이 추가됐다. covid virus답게 기관지 증상이 시작된 듯하다.
제육볶음과 된장국과 몇 가지 밑반찬이 밥과 함께 놓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현실을 직시했다. 이곳까지 물품을 전달한 아내의 고생스러움에 한 번 더 감사하며 음식을 책상 위에 꺼내놓고 최대한 맛있게 먹었다. 좁은 공간에 움직임이 한계가 있어 배고픔이 더하지 않았던 탓에 먹을 만큼만 꺼내놓되 대신 야무지게 먹었다.
그때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안내 문자가 왔다. 2022.03.01. 24:00까지 격리하라는 메시지, 그리고 동거가족의 격리 안내였다. 내용을 아내에게 전달하는 순간, 진정한 자가 격리자의 생활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사이에 나의 자가격리 사실을 알게 된 양가 부모님과 직장동료, 지인들의 문자와 전화, DM 등이 쏟아진다. 염려와 걱정, 응원과 격려가 한데 섞여 있었는데 모두 마음을 써주셔서 감사하다.
전화 통화와 문자, DM에 일일이 답장을 하면서 어제 의사에게 처방받았던 약 한 봉지를 꺼내 먹었다. 먹고 난 후엔 먹었던 식사 용기를 세면대에서 설거지했고 뒤이어 양치질과 샤워를 했다. 식사 용기가 깨끗해진 것처럼 내 몸도 개운하다.
문 밖에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있는 방안에 아이들이 필요한 게 있다고 하기에 손소독을 3차례나 하고 마스크를 쓴 체 조심히 문밖으로 전했다. 잠시 마주친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아빠! 힘내!라고 외친다. 평소 집안에서 온갖 장난과 보드게임, 놀이 등을 함께 하던 아이들과 나의 관계도 잠시 멈쳐있어야겠지. 생이별도 이런 생이별이 없다.
그 후 반드시 사무실에서 하지 않아도 될 - 재택근무 중에도 가능할 만한 업무를 찾아 하나씩 처리했다. 월 말까지 진행되었던 기관 욕구조사 결과 보고서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업무연락과 관련한 메일에 답장을 보냈으며 네트워크 관계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발열반응에 체온을 확인하니 37.6도. 심하게 몸이 아픈 건 아니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잠을 청했다. 어제도 오늘도 이 어색한 낮잠 시간, 잘도 자고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열이 떨어진 기분이다. 환기를 한바탕하고 7분짜리 홈트(집사부일체 몸바칠 - 몸을 바꾸는 홈트 7분)를 틀어놓고 조심스레 운동을 하고 났더니 배가 고프다. 이 와중에 배꼽시계는 정상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고는 아내가 준비해 준 구호물품 중 뜨거운 물에 누룽지를 넣고 제육볶음, 무김치를 함께 먹으니 든든해졌다. 자가격리를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미각과 후각 등을 잃어 힘들었다는데 난 오히려 밥맛이 좋으니 이건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입이 열려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확진자가 확찐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를 통해 사례가 될 판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이후 창밖을 보면서 잠시 멍을 때리고 있었더니 PCR 검사를 마친 우리 가족들의 우당탕, 왁지지껄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어제처럼 검사할 때 울지 않았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딸과 아빠의 점심 식사 여부를 묻는 아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다. 괜히 더 고마웠다.
김초엽 작가의 책을 한권 읽다가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아이들과 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를 고민했다. 나보다 이 상황을 더 지루하게 보내고 있을 아이들에게 그래도 아빠 노릇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민 끝에 나온 것은 겨우 '빙고' 정도였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빙고는 우리 가족이 같이 봤던 '그리스 로마신화' 등장인물을 나열하고 순서를 정해서 자신의 구역을 체크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문을 통해 크게 떠드는 것보다 전화로 대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해서 휴대전화를 붙잡고 한참 웃고 떠들며 빙고게임을 했다. 2번 연속 아들이 최종 승자가 되었지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과의 활동은 언제나 그 자체만으로 흥겹다.
어둑어둑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몇시간 전 실시했던 PCR검사결과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음성으로 확인되었고 난 세번째 저녁식사를 맛있게 마주했다. 그러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이 하루가 문득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혼란하여 힘겨운데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분들 덕분에 오늘 하루를 무리 없이 보낸 게 아닌가. 안부 연락을 주신 많은 분들, 위험을 무릅쓰고 선별 진료소를 지키는 의료진들, 늘어나는 확산세에 밤낮없이 고생하시는 보건소 공무원들, 아픈 나를 어떻게든 회복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우리 가족들까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보답하는 길은 무조건 건강하기! 이 마음으로 자가격리 이틀째 밤을 보낸다.
_by 레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