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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9. 2022

혼자만 누리는 평화가 미안해지는 날

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이야기 3일차

2022.02.25(금)


자가격리 세 번째 날, 목구멍이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고 잠에서 깨어났다. 마른 목에 수분을 잔뜩 채워놓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밀착시켰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함보다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뉴스 화면에 잠시 시선을 고정시켰는데 오늘도 아픈 뉴스가 가득하다. 


평화로운 나의 공간과 달리 지구 반대편에서는 결국 나라 간의 충돌이 큰 위협이 되어 전쟁이라는 단어를 꺼내놓고 말았다. 포탄이 날아들고 건물이 무너지고 화마가 사람들이 덮치는 장면 이후 등장한 피란민 행렬. 국가 간 이념 차이가 이렇게 불행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으매 내 마음에도 작은 공포심이 자리 잡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미국 등이 연결되어 있는 이번 분쟁을 보면서 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시절 일본, 중국, 유럽 등지의 국가를 여행했던 적이 있다. 휴전선을 가지고 있는 분단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이 나를 보며 묻는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바로 "괜찮아, 무섭지 않아?"였다. 정확하게 지명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북쪽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남쪽에서 왔다고 해도 불안해서 어떻게 거기서 사냐고 고개를 가로지었다. 하지만 난 매번 불안하거나 무섭지 않다고 답했다. 지진과 쓰나미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본보다, 소수민족과의 분쟁이 잦은 중국보다, 문화 갈등의 유럽보다 안전하고 살만한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나는 한 번도 내가 사는 나라가 다시 포화 속에 혼란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않고 자라왔으며 현재도 불안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닌 그다음, 다음 세대에 태어난 나에게 전쟁은 그저 머나먼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밤에 2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보도를 봤음에도 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뉴스의 시대>를 통해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 넋이 나갈만한 엄청나고도 비극적인 소식 앞에 사람들은 '내 삶은 그렇게 나쁘지 않구나'라고 여기며 오히려 긍정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공감 능력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소화하기에 한계가 있는 정보와 편향적이고 오류투성이인 사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성찰하며 명상하는 시간을 뺏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현듯 아무도 없이 고립된 방 안에서 나 홀로 누리는 평화가 미안해진다. 작은 화면 너머에 비친 참혹하고 비참한 그곳이 속히 안녕하길 기원해 본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메시지도 함께 남겨본다. 


_by 레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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