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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9. 2022

아마도 나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이야기 5일차

2022.02.27(일)

머리맡에서 울린 스마트폰의 울림소리에 잠에서 깼다. 확인해 보니 아내의 전화였다. 잘 잤는지 안부를 물어보며 내 컨디션을 체크한다. 나는 눈과 머리가 무겁고 코와 목이 불편한 증상이 첫날보다는 괜찮고 어제보다는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먹고 자고 먹고 쉬고만 했는데도 피곤한 건 왜인지 모를 정도로 아침 기상 시간이 힘겹다. 설상가상으로 딸아이는 밤사이 열이 올랐다고 한다. 염원과 바람이 결국 하늘에 닿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내가 아픈 것 이상으로 이 상황이 힘들어진다. 


아내와 전화를 끊고 오랫동안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길 바랐던 딸아이가 걱정됐고 고생만 시키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 감정이 한데 섞여 머리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두통이 몰려온다. 이럴 땐 다시 잠을 청하는 게 최선이겠지.


1시간쯤 더 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괜찮아진 듯하다. 막혔던 코가 뚫려서 머리가 맑아진 것인지, 아니면 머리가 맑아져서 코가 뚫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태가 호전되었음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는 글을 쓰는 것을 제외하곤 철저히 노트북과 TV,  스마트폰을 멀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는 이러한 행위 때문에 어지럼증이 더 깊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그런다. 대신 모니터가 아닌 차창 밖을 바라봤다. 


초록의 순이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무심하게 따뜻한 날씨 덕분에 봄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불어오는 바람의 존재를 설명하고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뿌리가 단단한 작은 나무는 마지막 겨울을 잘 이겨내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봄이 오는 광경 사이로 보이는 집 앞 작은 농구장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잰걸음이 활기를 불어 주고 있는데 이상하게 내가 속한 이 작은 공간만 잿빛으로 어두운 것 같다. 


15년간 군만두만 먹었다는 영화 <올드보이> 속의 오대수처럼 혹시 나도 이곳에서 보낼 시간이 일주일이 아니라 그 이상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좀비들이 판치는 세상이 펼쳐지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 자가격리를 마음대로 끝내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이곳을 탈출해도 되는 걸까?라는 망상, 아니면 물이 부족한 시대가 갑자기 찾아와 지금 내 방에 있는 1.5리터 물 2병이 나의 마지막 생명수라면 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극단적인 상상 등등.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 혼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이 너무도 비약적인 상상의 나래로 이어진다. 자자, 그따위 생각은 덮어두자.


오전과 오후, 읽고 있던 SF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어 내려갔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역시나 흥미롭게 펼쳐진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김초엽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지구'의 수명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땅히 가상의 공간과 시간에서 삶을 살아봤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겠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애써 쓴웃음을 짓는다. 


하루 종일 책을 보고 글을 쓰고 또 상상하고 경험했더니 해가 넘어간다. 가상의 비극이 아닌 현실의 희극을 더 자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계를 넘어 쉽게 지치지 않길 바라는 욕망으로, 자욱한 안갯속에서도 침착하고 냉철함을 잃지 않길 바라는 욕심으로 그렇게 해넘이를 지켜본다. 


아마도 난, 오늘 하루 동안 '희망'을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단어가 필요했던 것 같다. 갑자기 그 단어가 소중해진다.


_by 레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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