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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9. 2022

원더우먼 아내의 강렬한 존재감

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이야기 6일차

2022.02.28(월)

간밤에 도착한 문자 한 통에는 어젯밤 열이 나기 시작한 딸아이의 PCR 검사 결과가 담겨있었다. 38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목소리가 잠기고 머리가 아프다고 말한 증상이 정도가 있긴 했지만 나와 비슷했기에 난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간을 분리하고 격리를 했어도 확진의 여부를 알기 전, 우린 계속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했기에 어쩌면 당연했을 전염병의 이동경로였겠지만 제발 아니길, 부디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은 산산이 흩어지고 남은 건 놀랍고 힘겨운 현실뿐이다. '양성'이란 두 글자가 나를 가리킬 때보다 지금이 더 받아들이기 힘든걸 부성애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는 딸아이가 아플 기미가 보일 때부터 집 안에서 아이들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어젯밤에는 딸아이와 따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리고 양성 판정을 확인한 이후에는 격리 공간의 재배치를 염두에 두고 아침부터 마치 인천 상륙작전을 펼치는 맥아더 장군처럼 상황 설명과 공간 활용에 대한 브리핑을 쏟아냈다. 든든하고 듬직하고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핸드폰 너머로 전달되길 바라며 아내에 말에 동의했다. 


아내는 탁월한 통솔력을 바탕으로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확진자가 한 명에서 둘로 변한 현실 속에서 환자들이 지낼 공간의 영역을 늘리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공간은 줄여갔다. 단번에 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안방 하나에서 안방과 마주 보는 아들의 방을 제외한 모든 곳으로 넓어졌다.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지만 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이들과 아내를 마주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아직 우리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비장한 아내의 표정을 읽고 서둘러 집 안 곳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안방에 머물면서 사용했던 모든 것은 아내의 손에 인계되었다. 각각 그 종류와 상황에 따라 청소기 속으로, 쓰레기통 속으로, 싱크대와 세탁기 속으로 움직였고 난 혹시나 모를 상황 때문에 통제된 주방과 현란한 무빙을 보이는 아내만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파의 감촉은 여전히 편안했음에도 어쩐지 홀로 방구석에 있을 때보다 이상하게 불편했다. 몸은 편안한데 마음이 불편한 이런 모순덩어리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4인 가족의 확진자 수가 1명에서 2명, 25%에서 50%로 급증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아내는 더 철저하게, 더 세밀하게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방역과 안전을 위한 자신의 희생으로 맨 마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희생을 보고 있는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 나는 그저 리더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탁월한 리더와 함께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공간 재배치는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그 사이 딸아이는 오늘 저녁부터 나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자기로 결정되었고 아내는 아들방에서 지내게 되었기에 나와 딸은 그 방 출입이 금지되었다.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처럼 우리 집은 원더우먼 아내의 활약 덕분에 위기를 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삶에 만약이란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 아내가 3차 접종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아내마저 양성이 나왔더라면 아마도 지금처럼 정상적이고 슬기로운 격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으로 다행이고 참으로 감사하다. 


나의 자가격리 기간은 내일로 24시를 기점으로 종료된다. 하지만 딸아이의 격리 기간이 남아있으니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시간 속에서,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언제가 먼 훗날에 '그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_by 레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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