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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Mar 09. 2022

외롭지 않은 나 홀로 생일잔치

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 이야기 4일차

2022.02.26(토)


자가격리 4일 차에 접어드니 이제 중반을 넘어섰다는 생각과 함께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다. 화장실이 딸려있어 마음껏 샤워를 할 수 있고 통창으로 마음껏 바깥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5평 남짓의 공간에 머물렀던 적이 없기에 지금의 이 순간이 무척이나 낯설다.


격리의 순간은 많은 것들과의 단절을 의미하는데 자유와 공간, 관계 등이 철저하게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열 걸음도 채 걷지 못하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철저히 제한된 나만의 세상, 가족은커녕 누군가와의 편안한 만남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자유를 잃어버린 철창 속 감옥이 흡사 이른 느낌일까 싶다가도 이따금씩 아이들과 아내로부터 생각지 않았던 룸서비스를 받을 때면(절대 사식이 아니다. 룸서비스라 부르고 싶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반갑게 그것을 맞이한다.


오늘 난 생일을 맞이했다. 1년 전만 해도 기관의 청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선물 받고 감동과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복에 겨웠던 것 같은데 오늘은 나 홀로 방 안 구석에서 그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고 외롭진 않다.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문틈 사이로 편지를 보내주고 생일 축하 노래를 떠들썩하게 불러주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분들의 축하 선물과 메시지가 자그마한 스마트폰을 통해 보내져 왔다.


올해는 특히 나의 상황과 현실 때문인지 전과 다른 건강 관련 선물들이 도착한다. 마사지 건과 영향제, 비타민 등을 보내주신 지인 덕분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감사히 고맙게 잘 받아 회복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오른다.


많은 분들의 성화에 감사하는 한편 이곳의 삶을 절반 정도 보낸 나는 이 생활에 나름 적응하고 있다. 때마다 먹는 음식과 약을 꾸준히 잘 먹고 있으며 하루에 2~3번씩의 환기도 철저히 지켜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으니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도 마음껏 하며 누군가에겐 무료한 이 시간을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다.


보고 싶었던 소설을 편안한 자세로 보기도 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그 세계로 다녀오기도 했으며 (김혜자 선생님이 나오는 <눈이 부시게>를 보면서 혼자 눈물이 그렁그렁)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도 매일 순간마다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취미가 동적인 사람은 정말 곤욕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적인 취미를 가진, MBTI가 I로 시작되는 나의 내향적 성향이 이럴 때 참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마치 고3 수험생활 중 야자 시간에 '시험만 끝나 봐라!'라며 현실 버티기 주문을 외웠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하나씩 미래를 떠올려본다.


먼저 이유 없이 달리고 싶다. 평상시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닌데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러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창밖에 걷는 사람들만 봐도 여유로운 산책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두 번째는 아이들과 원 없이 보드게임을 하고 싶다. 나와 다른 공간에서 격리 중인 아이들과 영상 너머로 몇 번 원격 보드게임을 실시했지만 그 맛이 도저히 살지 않는다.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나도 흥미롭지 않다. 격리가 해제되면 아이들하고 앉아서 편안히 떠들며 보드 게임해야지!


세 번째는 직장 근처의 맛있는 빵집의 치아바타가 생각난다. 나름 맛집이라 빵순이, 빵돌이들의 빵지순례 코스인 그곳의 치아바타가 불현듯 떠올라 꼭 먹어야지 다짐해 본다. 나참, 그게 뭐라고...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것을 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부족하지 않은 나의 상태에 감사에 감사가 더해진다. 절반이나 잘 해낸 자가격리, 까짓 며칠만 더 잘 마쳐서 무사히 많은 분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겠다! 아자잣!


_by 레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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